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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 101> 첫 장을 열며
김유미 2011-05-26
1. 문화인과 민도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제일 먼저 택하는 course가 English 101, Math 101 등, 모든 기초 course가 101입니다. 큰 기업체에서도 신입사원에게 Management 101, Process 101, Quality 101등, 모든 기본을 '101'이라 소개합니다. 저의 글에 <문화인 101>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우리 한국인의 문화를 기본부터 찬찬히 다시 생각해보자는 뜻에서입니다.
한국은 2010년 G20 정상회의를 유치했고, 총 400억 달러 규모의 원전수주에 성공하였습니다. 골드만삭스가 한국이 2050년에는 세계 2위 국가가 된다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잘 살아보자”며 억척같이 살아온 세월을 뒤로 하고 이제는 다른 나라들을 도와주는 자랑스러운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감격스러운 일들이 꿈이 아닌 현실입니다. 이제는 당당하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선진국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막 선진국 입구에 발을 내민 것입니다.

'부자나라' 되었다고 '문화인'인가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인사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국격'이라는 어휘가 마치 최신 유행어처럼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국격'은 G20정상회담이나 원전수주가 저절로 안겨 주는 선물이 아닙니다. 국민 개개인의 품격이 모여 '국격'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국민 개개인의 품격을 높이는 데 신경을 써야 할 때입니다. 골드만삭스가 예측한 세계 제 2위 국가가 허황된 소리로 끝나지 않고 우리 후손들이 살아 갈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도록 단단하게 터를 닦아야 할 때입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타낼 때 민도라는 말이 자주 쓰입니다.
민도란 그 사회의 생활수준뿐 아니라 문화수준, 정치수준, 도덕 수준 등등을 반영한다 하겠습니다.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분명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습니다. 이제는 생활수준 못지않게 문화수준, 정치수준, 도덕 수준도 일등국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가장 기초가 되는 것들부터 하나 또 하나 짚어가며 그릇된 것이 있으면 고쳐나가는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최근에 한국의 어느 국회의원이 다른 국회의원을 가리켜 “야만인” 운운 했는데 그건 그야말로 누워서 침 뱉기입니다. “나는 문화인이고 너는 야만인이다.”라는 식으로 남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없습니다.

벼락부자, 벤츠 타고 강남 한바퀴 돌기
교통규칙이든 그 어떤 규칙이든 반칙을 일삼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는 사람보다 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면,
시위대가 합법적으로 불만, 불평을 표현하지 못하고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소란을 피워가며 시위를 한다면,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인터넷의 익명성에 숨어 개인을 상대로 사이버 테러를 일삼는 사람들이 많다면, 아직 한국은 선진국이라 말하기 힘듭니다. 한국은 부자나라는 되었을지 모르지만 민도가 높은 국가는 되지 못한 것입니다.
어느 날 땅값이 올라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환한 대낮에 영화에서 보던 실크 가운을 걸치고 벤츠를 타고 강남을 한바탕 돌았다는 우스개 이야기처럼, 부자 소리는 들어도 문화인 소리는 듣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들
“아이고, 너무 쉽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다 배운 것을 왜 되풀이 하지?”
수학이든 영어든 대학의 '101 course'를 택하는 많은 학생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 때 다 배운다."는 말도 있듯이, '문화인 101 course' 또한 이미 다 아는 것들입니다. 귀가 아프도록 들은 말들입니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법규는 잘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반드시 지키도록 철저하게 단속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독일에 자주 출장을 가는 사람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독일 사람들은 건널목에 빨간 불이 켜 있으면 절대 길을 건너지 않는다 합니다. 대도시의 대로에서뿐 아니라 작은 마을에서도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는 사방에 차 한 대 안 보여도 빨간 불이 파랑 불로 바뀔 때까지 사람들이 으레 기다린다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심이 강하기 때문에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반칙을 하지 못하는 것.
이 자기 존중이 바로 문화인의 자세입니다.   

"엽전인가 봐"  "네, 엽전입니다" 
미국에서 길을 건널 때 뛰어가는 동양인을 보면 한국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끼리 하는 말입니다. 
50년 전에 미국에 유학 온 한국사람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에는 한국인은 고사하고 거리에서 동양인을 만나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건널목에서 뛰어가는 사람이 있어 “엽전인가보다” 했더니 “네, 엽전입니다.” 하며 반가워 했다합니다. ‘엽전’은 요즈음엔 듣기 힘든 말로 '왜놈'이니 '되놈'같이 아주 모욕적인 낮춤말이지만 그래도 뛰어 가던 사람이 '엽전'이라는 말을 알아듣고 너무 반가워했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 친구 아버님이 미국에 여행 오셨을 때 이야기입니다. 음식 잘하기로 유명하다는 중국 식당에 갔는데 손님들이 식당 밖까지 줄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돈을 주고 빨리 들어가 앉을 수 있도록 좀 해주십시오.”
친구 아버님을 모시고 온 비서가 나에게 다가와 부탁한 말입니다.
여기서는 돈을 준다는 게 통하지 않는다고,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하니까 돈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 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너무 기다리실 것 같으니 다른 식당으로 가시자 하니까 오히려 친구아버님은 재미있다고, 그냥 기다리자고 하셨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참 신기하구나. 먹기 위해 이렇게 줄에 서서 기다리다니...”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자주 보는 풍경이 기다리는 사람들 모습입니다. 식당에서도, 운동경기장에서도, 영화관에서도, 사람들은 마치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는 듯, 그렇게 유유하게 기다립니다. 건널목에서도 뛰어갈 정도로 급하고 식당에서도 주문한 음식 빨리 가져오라고 손뼉을 딱 딱 쳐대는 급한 사람들과 대조적입니다.

무례한 사람보다 공손한 사람 많은 사회
 
몇 년 전, 과속으로 티켓을 받은 적이 있어 법정에 갔었습니다.
아무래도 과속했다는 마일수가 억울하게 여겨져 따지러 간 것입니다. 내 차례 바로 전 사람은 출근시간에 갓길로 달리다가 티켓을 받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갓길로 달리면서 느릿느릿 기어가는 차들을 보면서 바보들이라 했겠지요. 당신의 행동은 반칙 중에서도 아주 질적으로 나쁜 반칙입니다. 규칙위반 벌금 중에서 가장 중한 벌금을 물도록 하십시오.”
반칙 중에서도 아주 '질적으로 나쁜 반칙'이라는 그 판사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나 하나만 빨리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갓길로 씽씽 달린 그에게 최고 벌금이 내려졌습니다. 
숨차도록 급하게, 급하게, 달려온 탓에 오늘 우리는 자랑스럽게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습니다. 급하게 달리다 보면 옆 사람을 밀치기도 하는 등, 무례를 범하기 쉽습니다.
이제는 무례한 사람들보다 공손한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
법과 질서 지키기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보다 틀림없이 지키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
이런 기초 작업부터 단단하게 다져가며 민도가 높은 한국을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김유미 작가의 홈페이지 www.kimyumee.com
(2010.2.19. 뉴데일리 연재 칼럼)
  
박근혜씨에게
국회의원 수준이 국민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