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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김유미 2011-12-26
그 사람

김유미 /재미작가

“누구도 누구를 존경하지 않는다.”
정직, 순수, 신뢰 같은 어휘들이 비웃음을 받는 사회.
한국 신문에서 “아무나 조롱하는 사회”라는 칼럼을 읽으며 새삼 얼마 전에 받은 친구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증오와 불신과 조롱보다 마음 따스해지는 '그 사람'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친구의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위로 편지를 보냈더니 고맙다는 회신이 왔습니다.
"He Loved me more than himself."
세상을 먼저 떠나간 남편은 자기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했다고 한 친구의 그 말이 잔잔하게 가슴에 파고들어 몇 번을 읽어보았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아내를 더 사랑한 사람. 
세상에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그보다 남편이 자신보다 아내인 '나'를 더 사랑했다고 믿는 그런 확신을 가진 아내는 과연 몇이나 될까.
 
불쑥 하와이 연등행사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종교나 인종의 구별 없이 더불어 평화스럽게 살기를 축원하는 행사이며 또한 먼저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하는 행사입니다.

“이 세상에 와서 당신을 만났다는 게 내 생(生)에 가장 큰 축복이었소.”

어떤 남자가 이렇게 한 줄을 써서 등에 붙이고 마치 그 등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기라도 한 듯, 차마 바다에 띄우지 못하고 두 눈을 감은 채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당신을 만났다는 게 내 생(生)에 가장 큰 축복이었소.'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이렇게 간곡하게 절절한 고백을 할 수 있는 '그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사람
그 사람이 잘 생겼기 때문에 사랑한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박식하기 때문에 사랑한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에 사랑한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 이기에 사랑한 것입니다.
밤바다에 반딧불처럼 반짝이면서 조금씩 멀리, 더 멀리 떠가는 등불들이 이렇게 합창을 하는 듯싶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특히 남녀 사이의 많은 문제점들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둔갑시켜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성을 그리워하는 나이가 되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알게 모르게 자기 상상 속에 완전무결한 사람을 만들어 그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듯 한 착각 속에 그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상속의 그 완벽한 애인이 바로 그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혼란과 혼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고통의 실체.
그것은 상대방이 아니고 내가 만들어 놓은 허상입니다.
많은 경우, 상대방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는 데, 내 기대와 요구가 무너지면서 상대방이 변했다고, 실망하고 심지어 배신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도 아니고 불행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별 뾰족한 길이 없어 그냥저냥 살아간다고 말하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다시 결혼하게 된다면 절대로 저 사람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부부들도 있습니다.
 
먼저 간 남편은 순수한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그는 가식과 오만을 모르는 인격자였다고, 해가 갈수록 그의 인품을 더욱 더 존경하였다고 친구는 편지를 이렇게 맺었습니다.
 
먼 거리에서는 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가까이 알면 알수록 점점 실망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회 지도층이라고 행세하는 사람들 중에는 혼자만 의롭고 깨끗한 척 하다가 온갖 비리가 밝혀지자 더 이상 변명이나 해명을 할 수없는 궁지에 몰려 자살의 길까지 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사람에게서 '그 사람'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 인격자였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건,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최대의 찬사라 하겠습니다.
그 사람.
인생을 마무리 할 때 그 사람은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인격자'였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정계, 재계, 교육계, 종교계에도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미래가 밝아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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