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자료실> 김유미 자료실
 
따님이 말하는 아버지 /작가 김영수를 말한다 /김유미(이화여중 3년, 1956년 3월. 월간여성지 여원 3월호)
관리자 2014-01-01
여원(女苑) 1956년 3월호 따님이 말하는 아버지

作家 ▪ 金永壽 氏를 말한다
梨花女中 三年
金 由 美
 
여원-작가 김영수(1).jpg
 
 
아버지는 돈도 없고 권력도 없는 가난한 예술가입니다.
어느 나라도 예술가란 다 그럴는지 모르지만 한국의 예술인들은
고통을 질머지고 살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동무들의 아버지 중에는 정치가도 실업가도 군인도 계십니다.
때때로 동무들의 집에 가 보면 장식물 하나하나가
눈이 부시지 않는 것이 없읍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이년 전에는 무척 이런 것들이 부러웠읍니다.
이런 것들을 사주시지 않는 아버지를 나는 원망도 하였읍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어린애와 같았던 그 때를 웃지 않은 수가 없읍니다.

보름 전 아버지가 일본서 나오셨을 때 나는 무한한 행복을 느꼈읍니다.
흔히 어른들 한테서
『요새 세상에는 그저 돈이 제일이야. 돈이 없으면 친구도 없어.』
하는 소리를 나는 늘 들어 왔읍니다.
그러나 보름 전 아버지가 일본서 돌아오셨을 때 아버지는 빈 몸으로
나오셨읍니다.
가난한 문학가는 어느 곳을 가도 「가난」이란 두자를 면한 수 없는 듯.

그러나 비록 빈몸으로 돌아오셨지만, 아침부터 깊은 밤중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친구들이 찾아 오셨읍니다. 때로는 주무시고 가시기도 하고.
나는 이런 광경을 볼 때 무척 기뻤읍니다.
고추장 찌개 한 그릇을 놓고 쭉들 둘러앉으셔서 술을 잡수시는 모습을
볼 적에, 가난한 생활 속에도 진실한 행복은, 진실한 기쁨은 있구나 느꼈읍니다.

정월 초하루, 그러니까 아버지가 「떡국 한 그릇」이라는
라디오 드라마를 쓰시고, 방송국에 나가셔서 직접 연출을 하고 돌아오신
날이었읍니다.
한 동내에 사시는 C선생님이 찾아 오셨읍니다.
C선생님은 아버지와 굳은 악수를 하시면서『수고하셨읍니다.』하고
감격의 어조로 말씀하셨읍니다.
나는 이날 밤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돈에서 얻을 수 없는 행복,
권력과 세력에서 얻을 수 없는 참다운 행복이야말로,
바로 우리 가정에 있구나 하고 진심으로 느꼈읍니다.

어느 날, 사소한 일로 언니와 다투게 되었던 날입니다.
동무 집에 가서 놀다가, 오후, 거진 어둑어둑해서야 집에 돌아 왔읍니다.
『유미냐.』아버지의 다정하면서도 엄숙한 음성이 들렸읍니다.
『어서 들어오너라.』사뭇 조용한 음성이 또 한번 들렸읍니다.
방에 들어가니까, 언니가 아버지 앞에 앉아서 꾸중을 듣고 있었읍니다.
『유미야, 너도 여기 앉거라.』일본서 나오신 후 처음으로 대하는
엄격하신 모습에, 나는 정말 무서웠읍니다.
『나미야, 유미야, 너희들은 이제 다 큰 여학생들이 아니냐.
너희들이 지금 싸움을 한다면 동생들은 어떻게 되겠니?
너희들이 이렇게 싸움을 한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태껏 헛수고를
한 것이 아니냐. 六▪二五 때 피난 가던 것을 생각하니?
구루마 위에 짐을 싣고 동생들을 구루마 꼭대기에 태우고,
또 너희들을 데리고 고생고생해가며 피난 가던 일.
나미야, 그때를 생각하니?
영천의 아주머니집의 순애는 피난을 가다가 잃어버렸다지 않니?
또, 원길이는 六▪二五 때 죽고.』
한숨을 쉬신 후, 언니와 저를 번갈아 보시면서 말을 이으셨읍니다.
『너희 오남매와 이렇게 다 모여서 다시 살 수 있게 된 것을
무엇보다 다행이다고 생각하여야 한다.
그런 것도 모르고 형제끼리 싸움을 하다니,
난 다시 한번 너희들이 싸움을 한다면 영영 너희들을 보지 않으련다.
내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믿고 사니?』

◇▪▪▪▪▪▪▪▪▪▪▪▪▪▪▪▪▪▪▪▪◇
아버지는 우리들을 꾸중을 하실 적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분입니다.
그날, 언니와 나는 다시는 안 싸우겠다고 맹세를 하였었읍니다.
전 아버지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읍니다.
◇▪▪▪▪▪▪▪▪▪▪▪▪▪▪▪▪▪▪▪▪◇

크리스마스 전, 눈이 나리던 날입니다.
달은 유난히도 밝아 보이는데, 눈은 소리 없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읍니다.
나는 가만히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읍니다.
눈이 이렇게 아름답게 나리는 밤을 그대로 아래목에 누워서 딩굴기는
정말이지 싫었기 때문입니다.
넓은 애스팔트에 눈이 나리는 밤거리를 나는 천천히 마냥 걸었읍니다.
이렇게 조용한 혼자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퍽 즐거웠읍니다.
서대문에서 뜻밖에 A 선생님을 만났읍니다.
선생님도 홀로 나오신 모양입니다.
『오오, 웬일이야, 혼자 나왔나.』같이 걷자 하시기에, 나는 A선생님과 함께 근 한시간 반 동안을 걸었읍니다.
A선생님은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들 중의 한분으로서
열심으로 공부를 하고 계신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과 거닐면서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하여 주셨읍니다.
『문학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남의 기쁠 때나 슬플 때의 심정을
잘 이해해야 돼. 깊게 이해하는 데서 남을 잘 파악하고
자기 감정을 그대로 붓으로 옮겨 놓는 것이 곧 글이란다.
노력을 하다가 쓰러져도 노력에 노력을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단다.』
나는 이날 눈이 오는 밤거리를 걷던 생각이
평생 잊혀지지 않을것만 같았읍니다.


며칠전 심부름을 갔다오니까, 안방에서 커다랗게 언니가 무엇인지
낭독하는 소리가 들렸읍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나의 서투른 시(詩)였읍니다.
나는 가슴이 막 뛰었습니다. 한자 한자 쓴 것을 책상 밑에 숨겨 놓았더니,
아마 어머니가 방을 치우시다가 꺼내신 모양입니다.
내가 들어서니까, 아버지는 연방 「틀렸어」하시면서 나를 쳐다보시었읍니다.
「이게 무슨 시냐」나는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읍니다.
얼굴이 확확 달아올라서 어찌 할 줄을 몰랐읍니다.
모두 다 나가신 후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읍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게까지 나쁜 것 같지가 않는데,
나는 다 찢어버리고 싶었읍니다.
그러나 언젠가의 A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읍니다.
「그렇지, 난 아직 중학생이니까」하고
나는 모두 꼭꼭 창겨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다가 감추어버렸읍니다.
나는 글을 쓰시는 선생님들은 모두 아버지와 같이 대하고 싶습니다.
아니 아버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웃으운 소리로 여러 사람들을 웃기시는 것도,
또 애꾸지게 어린애들을 울리시는 것도 아버지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친구분들의 모두 공통적인 성질이신 것만 같습니다.
아버지와 같이 오래 이야기를 계속하면 정신이 다 없어지는 듯 합니다.
물론 웃으운 이야기를 하실 적이에요. 한참 추켜올려 주시는가 하면,
어느새 막 흉을 보시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정신이 없어집니다.
또 무용가나 성악가의 흉내를 내시어서 사람을 웃기실 적에는
아주 집안이
떠나갑니다.
나는 이런 아버지의 성격이 그래도 좋습니다.
아마 나의 아버지가 돼서 그런가보아요.
나는 비록 돈은 못버시는 가난한 아버지라도
오히려 이런 아버지를 가졌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언제나 집안에서는 웃음이 떠나가지 않고,
토요일마다 열리는 「가족회의」에서 서로의 잘못을 이야기해가며
서로 생활의 향상을 꾀하는 일, 나는 이것으로써 만족합니다.
더 이상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이 없읍니다.

그러나 한가지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아버지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않는 훌륭한 문학가가 되셨으면 합니다. 전쟁으로 형편없이 부패해진 이 사회에서,
문학으로써 다시 이것을 일으키고 창조하시기를 나는 아버지에게 바랍니다.
이것이 나의 단 한가지 소원이라면 소원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어서어서 저 유명한 쉑스피어나 톨스토이 같은 문호들이
한국의 문인들 중에서도 나오기를 고대합니다.
특히 저의 욕심으로는 아버지가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내가 아버지에게 바라는 최대의 희망입니다. (끝)
여원-작가 김영수(2).jpg
여원-작가 김영수(3).jpg
실패확률 높은 조기유학 10가지 (1997년 신동아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