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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작가 딸이 본 김영수
관리자 2007-06-10
*2006. 5  <방송문예> 5월호 p91
 
대물림 작가 딸이 본 김영수
 
새로움을 추구하던 외로운 여행자
 
아버지, 김영수는 생(生)과 사(死)를 여러번 넘나 든 그의 삶 자체가 극적이었듯, 여러 면에서 극적인 점이 많다.
'새 작품을 시작하시는구나' 하고 식구들이 다 느낄 수 있을 만큼 새로 시작하실 때는 유난스럽다. 우선 아버지 방 청소부터 대대적으로 해야한다.
구석구석 정돈은 물론이고 재떨이도 쓰레기통도 마치 새로 사온 것처럼 때끗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주로 주무신다. 주무시는 건지 눈을 감고 계시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낮이고 밤이고 그렇게 누워만 계신다. 식구들이 의아해 문 틈 사이로 들여다 볼 정도로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때로는 며칠씩 간다. 물론 식사도 혼자 하신다.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다. 책상 모서리에 붙어 있는 벨이 연락병이다. 벨 소리 한 번이면 누구, 두 번이면 누구, 이런 식이다.
그러다 어느 날, 원고지에 넘버를 탕탕 찍으신다. 펜으로 쓰시는 게 아니고 도장으로 찍으신다.빨강, 노랑, 파랑 등 가지가지 색깔이 돌아가면서 나오는 넘버링으로 원고 쓸 분량을 다 찍어 놓으신다. 원고지 70장이다 하면 딱 70까지다. 단 한 장도 넘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또 주무신다.
"아유, 이왕 쓰실 거면 빨리 좀 쓰시구려"
어머니가 참다 못해 독촉하시면 아버지는 기막히다는 듯,
"내가 대서방이야?" 하셨다.
벨이 아버지 서재인 사랑방과 안방 사이 연락병 노릇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6.25동란 때 일본에 있는 VUNC(유엔군사령부 방송)에서 근무하실때 몹쓸 병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하셨는데, 의족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한옥 구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버지 의족 달아드리던 때를 생각하면 눈앞이 흐려온다. 나무에 살이 까지지 않도록 넓적 다리에 헝겊을 여러 겹으로 감은 다음, 질긴 나일론 줄이나 가죽 줄로 동여매야 했다.
"아버지, 이만하면 떨어지지 않을 거야"
"아니다, 좀 더, 더 잡아당겨라, 더 잡아당겨."
(더 잡아 당기면 넓적 다리가 아죽 납작해질 텐데...많이 아프실 텐데...)
있는 힘을 다해 줄을 잡아당겨 가면서 내 눈물이 나무다리에 뚝, 뚝, 떨어지곤 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잠자는 듯 지내는 그 시간에 작품을 다 쓰신단다. 머릿 속에서 작품이 다 완성되면 그 다음에 할 일은 그저 술술 원고지에 옮기기만 하면 된단다.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김영수는 어쩌면 글을 저렇게 빨리, 쉽게 써낼가?' 의아해 하는데, 그건 이런 작업 전의 준비기간을 모르기 때문이란다.
"글을 일단 썼다 하면 멈추지 말아야한다. 흐름이 깨지면 안된다. 그래서 작가는 잘 먹어야 한다. 며칠 밤을 새워도 끄떡하지 않을 수 있게끔 잘 먹어 둬야 한다." 아버지가 강조하시던 말씀이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또 하나 하시는 일이 있다.
아버지는 원고지 여러장을 테이프로 붙여 아주 큼직한 도화지처럼 만든 다음, 거기에 작품 무대, 시기, 등장인물, 사건 등등을 자세하게 써서 벽에 붙인다.
때로 배우나 탈렌트 사진이 붙기도 한다. 그러고는 쓰신다.
그야말로 낮이고 밤이고 그저 쓰신다.
때로 커피나 과일 같은 걸 들고 아버지 방에 들어가면 아버지는 누군가가 방안에 들어왔다는 것 조차 전혀 의식하시지 못했다.
"헉, 헉,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헉, 헉, 용서해주십시오, 헉, 헉"
마치 아버지가 그 작품 속의 주인공인 것 처럼 소리내어 가며 글을 쓰셨고, 그럴 때면 나는 살그머니 뒷걸음질쳐 나오곤 했다.
"아버지, 작가는 작품을 쓸때 그렇게 울면서 써요?"
나중에 이렇게 물어 보았을 때,
"작가가 펑펑 울면서 써도 독자는 눈시울이 시큰해질까 말까 하단다. 독자가 눈시울이 시큰해지기만 해도 작가는 성공한 거지. 그렇게 작가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가 쉬운 게 아니란다."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우선 재미있어야 하고 그 속에 철학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중 어느 하나에 치중하면 실패하는 거다"
"글을 쓰고 싶으면 많이 읽어야 한다. 쓰는 시간이 한시간이면 세 시간은 읽어야 한다."
문학 지망생이던 딸에게 틈틈히 들려주시던 말씀이다.
아버니, 김영수의 작품세계는 함마디로 서민의 애환이라 할까?
없는 사람, 억울한 사람, 불쌍한 사람, 빈민층이 주로 아버지의 작품 대상이었다. 드라마 <박서방> <굴비><거북이>, 희곡 <혈맥> <단층>, 소설 <소복>등등의 소재가 다 없고 불쌍하지만 선량한 사람들이다.
이건, 아버지 유년 시절의 가난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여겨진다.
 
소설, 희곡, 시나리오, 드라마,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던 아버지.
아버지는 어느 규범이나 규칙 따위에 얽매이지도 않고, 평론가의 평이나 세상의 눈이나, 그런 데 신경 쓰지도 않고 두렵거나 무서워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순수한 자유인이었다.
이런 아버지를 가리켜 영화감독 신상옥씨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 했고, 전 MBC사장 최창봉씨는 "어린애처럼 순수한 분"이라고 평했다.
 
문예 진흥원 후원으로 몇몇 문학교수들에 의해, 흩어져 있는 김영수의 작품들이 발굴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하다.
최근 시나리오, 드라마 부문 4권이 먼저 나왔고 앞으로 희곡, 소설 부문도 나올 예정이다.
편저자 (서연호-장원재 공편)의 글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영수(1911~`977)는 한국 문학사에서 부당하게 잊혀진 작가 중의 하나다. 시, 소설, 희곡, 시나리오, 방송극, 라디오 드라마, 평론을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전방위로 활동한 작가, 그러나 그의 왕성한 활동량에 비해 김영수에 대한 연구서나 평론은 상대적으로 박약한 실정이다.
장르별 분업과 전업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거의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한 것이 오히려 그에 대한 관심의 초점을 흐리게 만든 것은 혹시 아니었는지. 21세기 초엽, 문학을 둘러싼 가장 첨예한 화두 가운데 하나는 장르보다는 이야기 자체를 중시하는 네러티브 논쟁과, 하나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하는 OSMU(One Source Multi-Use)에 대한 접근이다.
김영수는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갈래 여러 각도로 풀어내며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섰던 작가였다. 대표작 <혈맥>만 해도, 희곡과 시나리오와 소설이 존재하는데, 각 버전 사이에는 희곡과 소설과 시나리오의 특징을 고려하며 이야기의 결을 섬세하게 배치해간 정교한 바느질 솜씨가 가위 일품이다. 문학의 미래, 문학의 생존, 문학의 번성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네러티브와 OSMU의 거대한 논쟁의 와중에서 새삼스럽게 김영수를 떠올리는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그가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간에, 김영수는 30여년의 시차를 두고 문학이 나아갈 방법론 가운데 하나를 미리 탐험해간 선구적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여행자.
아버지, 김영수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새로운 곳에 도전하며, 혼자 만의 길을 걸어 간 외로운 여행자였다.                                                   ---끝---

 
미주 한인학교협의회 부회장 김유미씨
독자의 스크랩 <조선일보 김유미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