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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이영준이 만난 작가 김유미
관리자 2007-05-26
*1988. 12월호 여성동아 창간300호 기념 특대호(동아일보사)
이 사람의 삶---김 유미 (재미 주부작가)
 언제나 '뜨거운 가슴'으로 살고 싶다
글-이영준(방송작가)
 
 
며칠 전의 일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MBC 작가실에 나와 원고를 쓰고 있었다.
그때 바로 내 옆자리에 여성 방송작가 이항렬씨가 웬 낯선 중년부인 한 사람과 나란히 들어왔다. 키는 보통 키에 아직도 소녀티가 풍기는 부인이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의 주의를 주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항렬씨는 가을 개편 전까지만 해도 MBC<가요 스포츠> 프로그램의 작가와 MC를 겸하고 있어 이따금 출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도 어떤 일로 동행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이 선생님"
이항렬씨가 나직한 소리로 불렀다.
"예?"
"소개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드린 책을 쓰신 김유미씨예요"
"아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나는 김유미씨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이항렬씨로부터 받은 김유미씨의 책은 <뜨거운 가슴으로>라는 미국 이민 수상집이었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나는 우연히 김유미씨의 언니인 김나미씨와 만나 이 책의 표지에 대한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김유미씨는 재미 여성작가이며 지금은 고인이 된 방송작가 김영수씨의 둘째 따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방송작가 김영수씨는 60년대와 70년대 방송작가의 대부(?)라고 일컬어질만큼 눈부시던 집필 활동을 하던 작가였고 나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김영수씨의 대표작으로는 <박서방><마부><새엄마>등이 TV 드라마로 혹은 영화로 발표되어 지금 40대중반 이후의 올드팬이면 아직도 그의 향토색 짙은 작품의 여운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바로 김영수 선생님의 따님이시군요? 참 반갑습니다"
나는 김유미씨의 모습에서 후배들을 끔찍이도 사랑하시던 김영수씨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 이번에 서울 오신 목적은?
나는 거리낌없이 물었다.
"예, 그동안 미국에서 교편생활을 하며 짬짬이 써 모은 글들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왔어요"
두 권의 책 중에 한 권은 이미 출판된 <뜨거운 가슴으로>라는 미국 이밍수상집이었고 다른 한 권의 책은 미국학교 교사의 수기로서 제목은 <미국 학교의 한국아이들>이라고 했다. 이 책은 모두 일선기획에서 출판되는데 서울에 오자마자 두 권의 책 교정을 보고 있다고 했다.
김유미씨는 1941년생으로 주부작가다. 이화여중고를 거쳐 63년에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김유미씨는 역시 아버님의 영향을 받아서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까?
"예, 그래요. 저는 어릴 때부터 작가생활을 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자랐지요. 어릴 때부터 집필하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차를 끓여서 서비스 했습니다. 우리 집은 4녀1남의 집안이었는데 제가 유독 글쓰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에는 아버지의 글을 제일 먼저 읽었습니다."
아버지 김영수씨는 둘째 딸 유미에게 작가가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제가 읽은 소감을 물었지요. 그러면 전 솔직하게 평(?)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소감을 곧잘 받아주셨지요"
김유미씨의 문학에 대한 뜻은 중학교때부터였는데 학교 교지에 <거울>이란 시를 발표했을 때 아버지는 무척 대견해 하셨다고 한다.
---그럼 고등학교 재학시절에도 계속 습작을 했읍니까?
"문학 소녀시절에는 누구나 그러하듯 전 시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래서 역시 교지에 <밤과 낮>이란 시를 발표했읍니다."
---이화여대 국문과 재학시절에는 문학수업을 어떻게 했읍니까?
"글쎄요. 뭐 문학수업이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요, 글을 쓴다는 것이 무척 좋았어요. 그래서 이대학보사에 들어가서 기자활동을 했읍니다. 그리고 습작으로 산문공부를 했지요"
---그래서 그 작품으로 추천을 받거나 신춘문예에 응모한 젓은 없었나요?
"예, 없었어요. 저는 그 무렵 문단에 빨리 등단하고 싶었읍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제 생각을 얘기했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반대하셨읍니다"
---이유는요?
"나이 어려서 등단할 생각은 않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젊은 나이에 신춘문예 당선이다 추천이다 해서 등단한 작가들 중에 과연 몇이나 계속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었어요.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고 글재주만 가지고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읍니다. 젊을 때에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실력을 다져야 하고 50대나 60대에 가서 한편을 써도 훌륭한 작품만 쓴다면 좋은 작가라는 것이었지요"
작가 김영수씨는 '조선일보'에 단편소설로 등단한 작가로서 대표적인 희곡작품으로는 <혈맥>이 있다. 한동안 김영수씨는 극단'신협'에서 활동했는데 지금이나 예나 연극은 배고픈 작업이었다. 그래서 김영수씨는 방송드라마를 쓰게 된 것이었다.
방송드라마의 생리는 일단 구상한 다음에는 날마다 시간에 맞추어 원고를 대주어야하기 때문에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쉬거나 중단할 수가 없는 것이다.
김영수씨가 딸인 그에게 이렇게 말한데에는 작가란 쓰고 싶은 글을 쓰려면 충분한 습작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과 한번 집필을 시작하면 거침없이 써나가는 저력을 젊을때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등단을 포기했읍니까?
"결국 저는 아버지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어요. 아버지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글 쟁이란 정년이나 은퇴같은 게 없다. 죽는 그날까지 글을 쓰면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이 작가지. 그러니까 젊을 때에는 등단하는 일에 욕심부리지 말고 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경험 세계를 심화, 확충시켜 나가야 한다. 열심히 공부만 하면 언젠가는 절로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니까.' 저는 아버지의 이 말씀을 지금도 되씹으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힘주어 말하는 김유미씨의 까만 눈 빛에서 그녀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그후 김유미씨는 등단하는 것을 유보하고 공부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미국 유학은 언제 떠났읍니까?
"그러니까 63년이었어요. 제가 이화여대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떠났으니까요"
---처음에는 어떤 공부를 했나요?
"그때만 해도 한국의 여자 유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았읍니다. 미국의 대학에서 나는  하루 종일 영어공부와 씨름을 했읍니다"
미국에 유학온지 1년만에 김유미씨는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인디아나에 있는 퍼듀대학에 다니던 안영기씨였다. 지금은 모토로라(Motorola)회사의 엔지니어 매니저로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자녀는 몇이나 되며 무엇을 하고 있읍니까?
"예, 큰 딸 종원(21)이는 일리노이 주립대학 4학년인데, 비지니스 전공이구요. 둘째 종영(19)이는 퍼듀대학 2학년으로 매스컴을 전공하고 있어요"
 
인간의 따뜻한 정감을 듬뿍 담아
 
김유미씨는 결혼한 후 두 자녀를 기르는 동안에는 학업을 잠시 중단했다고 한다.
---그 동안에는 가정주부로서 하는 일 말고는 어떤 일을 했읍니까?
"문학 수업이라고 할까요. 미국에 와서 영어공부만 열심히 했더니 우리 말의 어휘가 자꾸 부족해가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가 있었읍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보내주신 문학잡지를 탐독했어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잘 안되는 것을 느끼고 때로는 문학잡지에 실린 글을 원고지에 또박또박 옮겨 쓰면서 맞춤법과 띄어 쓰기 공부를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집으로 편지를 써서 보내면 아버지는 빨간 펜으로 새빨갛게 고쳐서 보내 주셨읍니다. 참 자상하고 고마우신 아버지였지요. 지금도 그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또 어떤 일을?
"작품을 썼읍니다. 습작이었지요.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다 끝낸 밤중에 글을 썼어요. 그때 쓴 작품 여섯편을 묶어서 처녀 작품집 <보이지 않는 그물>(1981년 태창문화사)을 발표했읍니다."
나는 그 작품집을 빌려 읽었다.
여섯 편의 작품 중에서 <토니 엄마>라느 단편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
 한국에서 무척이나 고생하면서 살아온 한 여인 토니엄마가 성실한 미국남편을 만나 미국에 와서 살아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미국에 유학 온 민경이라는 한 여대생의 시각에 비쳐진 토니 엄마의 번뇌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1인칭 형식의 소설로서 특히 꾸밈없는 일상 대화가 돋보인다.
토니 엄마는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시면서 향수를 달래며 살아간다. 그녀에게는 토니라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엄마보다 훨씬 유창한 영어를 한다.
토니 엄마의 영어는 엉터리 영어다. 그래서 토니는 엄마가 학교에 오는것을 싫어하여 오지 못하게 한다. 토니 엄마는 괴로워한다.
소설 속의 토니엄마와 민경의 대화를 소개한다.
"민경씨, 민경씬 아직 너무 어려서 내 말을 이해못할 거유. 요다믐에 자식을 낳아보면 내 서러운 심정 이해할까, 지금 어떻게 알겠수?"
무슨 소릴까? 무엇이 그토록 서러워서 술을 마신다는 것일까?
"토니가 무슨 말썽이라도 일으켰나요?"
"학교선 아무 말썽 없다우. 공부를 신통하게 잘해요"
"그럼 무슨 일이에요?"
"그놈의 새끼가 나를 환장하게 만든다우. 그 새깨 때문에 요즘 같아선 내가 죽어 버리든지 어디론가 없어지든지 하고 싶다우"
결국 토니엄마는 자기가 낳은 자식에게 마져 소외당한 고민으로 몸부림치다가 토니 아빠의 이해와 협조를 얻어 한국에 나와 몇달을 쉬게 된다.
토니 엄마는 자기가 미국 가기 전에 사랑하던 사람을 만난다. 그 애인은 물론 가정을 갖고 있는 유부남이었다.
두 사람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육체적인 관계로까지 진전시키면서 불태운다.
토니 엄마가 다시 미국에 왔을때 그 한국 애인의 씨앗이 그녀의 몸에 잉태되어 있었다. 토니 엄마가 살고 있는 주에서는 낙태 수술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다. 토니 엄마는 죽음을 각오하게 된다.
"서울에서 알았으면 수술을 하고 왔을텐데, 여기 와서야 알았다우. 도대체 어찌해야  좋을 지 앞이 캄캄해요. 이 애를 어떻게 낳는단 말이우? 이 애는 순 한국판일 테니 금방 나타날게 아니겠수? 이걸 어찌 숨기겠수? 어떻게 떼어 버리는 수가 없을까? 이놈의 곳에선 그게 위법이라니 어쩌면 좋수? 그야말로 난 죽어야 마땅한 년인가 봐."
"토니 엄마, 인간은 본능대로 살 수 없어서 동물과 다르고 그래서 죽는 날까지 괴로워도 하고 고민도 하는가봐요.(중략) 우리는 책임없는 행동을 할 수가 없어요. (중략) 곧 배가 불러 올텐데. 토니 아빠에게 솔직이 얘기하시는 길 밖에..."
민경이라는 주인공은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 준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얘기하세요. 잊을 수 없는 사람을 잊으려 노력하며 살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하며 살고, 그래서 인간은 약하면서도 또 강한게 아니겠어요?"
결국 토니 엄마는 민경이 시키는대로 토니 아빠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게 되는데, 토니 아빠는 말없이 밖으로 나가 버린다. 술에 취해 돌아 온 토니 아빠의 말을 작가는 이렇게 대변하고 있다.
"토니 엄마, 얼마나 괴로웠겠소? 나보다 정말 괴로운 건 당신이었을게요. 나에겐 당신 밖에 없소. 내 인생의 전부가 당신인 거요. 당신이 내게 돌아왔다는 것만이 중요하지 그 아무것도 중요한게 없소. 우리 토니와 제니처럼 똑 같이 키웁시다..."
작가 김유미씨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고 있다.
작가 김유미씨의 작품에는 인간의 따뜻한 정감을 듬뿍 싣고 있는것이 특색이다.
소재는 재미 한국인들의 생활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등장 인물들의 혈관 속에는 모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요란스럽게 조국을 사랑한다는 말은 없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속에는 그리운 조국의 아름다운 산하에서 얻어진 한국인의 향수가 스며있다.
작가 김유미씨는 이 창작집을 내보이며 수줍어했다.
"부끄럽습니다. 한국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도 하지 못한 처지인데다가 습작을 묶어 본 건데 호평을 해주시어 부끄러워요"
 
자신을 위한 삶
 
재미 작가 김유미씨는 두 자녀를 키우면서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마침내 그녀는 미국에서 교사가 되는 꿈을 이루었다. 일리노이 문교당국의 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교사 자격증을 얻었고 이중언어 자격증도 획득했다.
지금은 시카고 제미슨 초중급 공립학교의 교사로서 한국에서 이민 온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일리노이 한국학교 교장으로 한인2세 교육에 힘쓰면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1983~84년에는 '코리아 피플'지에 <슬픈 행복>이란 장편 소설을 연재했으며, 1986~87년에는 '세계일보'에 중편 소설 <칭크>를 연재하였다.
___칭크란 어떤 뜻인가요?
"칭크란 백인들이 동양인을 깔보고 부르는 말입이다. 백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굳센 의지와 생활상을 소재로 한 작품이에요."
---<칭크>란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요?
"그런 기회가 있으면 참 영광이겠어요. 그렇잖아요 '세계일보'에서 장편으로 연재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돌아가면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출간된 <뜨거운 가슴으로>를 쓰게 된 동기는 어디에 있나요?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나 자연에 대하여 인생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때묻지 않은 정열을 지닌 채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정열이나 사랑을 누구를 위해서 또는 무엇을 위해서라고 귀결시키지만 저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지난 25년동안 미국에 살면서 우리 이민사회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절절한 이야기들, 이민자들의 뭉클한 향수의 이야기들을 교포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해 왔던 (1981~86) 것들을 모국에 알리고 싶어 책으로 펴냅니다."
작가 김유미씨는 이 책 중에서 <공생의 숲>이라는 글을 읽어봐주기를 권했다.
그 마지막 본문을 여기에 옮겨 본다.
"(전략)......우리는 그 누구보다 우선은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결코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뜻이 아니다. 자신을 책임질 수 있어야 떳떳한 인간 구실을 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줄 알고 자신이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 숲이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각지 홀로 서 있으면서도 어울려 조화르 이루는 숲. 인간도 각기 독립한 개체로서 독자적인 개성과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서로 존중하고 침범 안하며 조화를 이루는 공생의 숲. 신록이 우거진 숲 속을 산책하면서 불쑥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참 멋진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함께 살아가는 숲이 공생의 숲이지요.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가 모여서 숲을 이루듯이 말입니다. 김유미씨는 작가이기 전에 한 가정의 주부입니다. 주부로서 사회 활동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요?
"미국이라고 해서 왜 어려움이 없겠어요. 자유 평등을 부르짖는 나라이고 여성을 위해주는 나라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여성은 여성 본래의 의무가 있잖아요. 주부는 먼저 가정을 생각해야죠. 건전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주부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해야죠. 그러면서 사회활동을 해야하니 단 10분도 태평스럽게 쓸 수가 없어요. 저도 아침에는 출근을 해야 하는데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커피를 마셔야할 만큼 시간을 쪼개어서 쓰고 있어요."
---그려면 작품 집필은 언제 하나요?
"주로 한 밤중에 합니다. 밤 10시경부터 새벽 1시까지가 집필활동을 하는 시간이예요. 낮에는 학교에 가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집필할 시간이 없답니다."
---그 밖에 활동하시는 일로는 어떤 일들이 있는지요?
"문학 단체로는 미주한인문협의 회원이며 시카고 문인회 회장을 맡아보고 있는데 회원은 남녀 15면쯤 됩니다. 가끔 만나서 작품 얘기들을 나누고 있읍니다. 모두들 아주 열심이예요. 한국 문단에 등단 경력도 갖지 못한 제가 회장이라서 쑥스럽군요."
---어떻습니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이라도 한국 문단에 등단할 생각은 없읍니까?
"있읍니다. 제 작품을 훌륭하신 선생님을 통해 평가를 받고 십습니다."
---평가 받고자 하는 작품을 하나만 고르시라면 어떤 작품인가요?
"글쎄요?...다 시원치 못한 작품들입니다만, 역시 중편 소설<칭크>가 어떨까 해요. 이 선생님께서 훌륭하신 선생님 한분을 소개해 주십시오."
이 밖에도 작가 김유미씨는 미국의 한인방송국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는것을 확인했다.
지난 65~87년에는 기독교 방송의 '명상의 시간'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지금도 코리아 케이블 TV(KCT)에서 '일요 초대석'이란 프로그램에서 MC를 맡고 있다.
---작가는 역시 좋은 작품을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욕심이 유달리 많은가봐요. 아버님이 병환으로 미국에 와 계실 때 제가 맹세를 했읍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기어코 훌륭한 작가가 되겠다고요. 하는 일들은 좀 쉬더라도 제가 쓰고 싶은 작품을 꼭 써야겠다고 생각해요. 마침 '세계일보"에서도 <칭크>를 장편소설로 연재하자고 하니까 그 준비 작업을 할 생각이예요. 준비작업이 끝나면 경제적으로는 다소 어렵겠지만 학교를 1년쯤 휴직하고 전적으로 집필에 매달려 보고 싶군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집필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일 듯 싶습니다."
작가 김유미씨의 앞날에 문운이 있기를 빌어본다.
 

 
 
 

 
 
원로 문화인들의 증언 녹음 테이프 20여개
미주 한인학교협의회 부회장 김유미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