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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기 연극 연구 (이석만지음, 태학사 1996 )
관리자 2007-12-15
해방기 연극 연구  (이석만 지음)
 
p.133-134
(2)  우익 연극 단체의 조직기
 
46년 7월 신전술 발표와 10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좌익계의 미군정에 대한 대립구도는 남한에서의 좌익문인 및 연극인에 대한 미군정의 탄압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좌익 연극인의 공연은 어렵게 되었고 우익 연극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게 되었다.
47년 8월부터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이루어지는 48년 8월까지는 우익 연극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중략)
 
이 시기 가장 활동이 많았던 극단은 중앙극장 경영주 박상진에 의해 중앙극장 전속극단이 된 극단 '신청년'이 있다. 이 극단은 극작가 김영수와 연출가 박진을 중심으로 서월영, 박제행, 장성일, 주선태, 남전, 최종남, 박경주, 김연실, 최은희, 송미남, 노재신, 강보금, 김양춘, 김복자 등의 직업 연기인들로 구성된 직업극단이었다.  '신청년'은 47년 10월 31일 김영수 작 <오남매> 를 허홍 연출로 중앙극장에서 창립공연을 갖었다. 창립공연 후 주로 김영수 작품 인 <사랑의 가족>, <사랑>, <상해야화>, <여사장>, <혈맥> 등을 꾸준히 발표하게 된다.
 
             (중략) 
 
48년 5월 22일 미군정 법령 193호가 발표되기에 이르는데 이는 입장세를 100% 인상하여 외화나 악극단과 동등의 취급을 받음으로 극장가를 위축하게 만들었다. 이에따라 각 일간지에서는 연극예술이 위축되게 되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에 6월 18일 무대예술원을 중심으로 딘 군정장관을 방문하여 조선연극옹호향상을 위하여 연극, 오페라, 심포니 등에는 입장세 인하의 언질을 받는다. 그후 49년 9월 27일에 가서야 입장세가 연극 3할, 영화 6할로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처럼 연극상연이 어려워진 가운데 문교부주최 동아일보 후원으로 "제 1회 전국연극경연대회"를 48년 6월 1일부터 7월 15일까지 개최하였다. 
참가 극단과 작품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극예술협회"의 <검둥이는 서러워>
"신청년" 의 <혈맥>
"호동" 의 <황보강>
"민예"의 <백일홍 피는 집>
그 외에 "동방예술좌", "청춘극장", "새별악극단", "예문사가극부","백조악극단","태평악극단" 등이 참가하였다.
수상단체와 개인을 보면 다음과 같다.
 
단체상:  해당무
작품상:  김영수 <혈맥>
연출상:  박 진  <혈맥>
장치상:  김정환 < 황보강>
연기상:  김복자 <신청년>, 박제행<신청년>, 이해랑<극예술협회>
 
제 1회 전국연극경연대회는 <극예술협회>, <신청년>, <민예>등 우익 진영 극단이 참가한 경연대회였음을 알 수 있다. <신청년>을 제외한 다른 극단에서는 제대로된 창작극을 발표하지 못하였고 번안극을 공연함으로써 경연대회의 의미를 축소하게 된다. 또한 단체상을 수상할 만한 극단이 있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우익 극단들의 활동이 두드러지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시기의 특징은 "전국연극예술협회"와 "한국무대예술원" 이 발족됨으로써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있던 우익 연극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 일환으로 '3 .1절 기념공연'이나 건국촉진 문화계몽 운동을 벌일 수 있었으며 "제1회 전국연극경연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극단 <신지극사>, <신청년> 등이 창단되어 전문극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구체적인 좌우이데올로기의 대립양상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좌익보다는 우익의 입지가 전 시기에 비해 상당히 부상하게 되었으며, 상대적으로 좌익은 침체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해방 직후 김영수의 열정
방송 드라마 선구자 김영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