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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인기 드라마 <억세바람> 작자는 누구?
관리자 2007-05-11
*1993. 2월호 '주부생활' 시카고 현지 인터뷰
김유미의 '아메리카에 분 억새바람'
바람난 태섭이 아내에게 용서 구할때 나도 울었다
 
초창기 미국 이민자의 생활을 다룬 MBC-TV 월, 화 드라마 <억새바람>.
요란하지 않은 내용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예전에 흔히 접할 수 있었던 이야기인 이 드라마가 새삼스레 시청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은 이민자들의 애환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민 1세대의 고통과 눈물과 사랑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는 재미 작가 김유미씨.
자신의 작품이 드라마화 되면서 일반에게 알려졌지만 그는 꾸준히 미국 교포사회와 한국 문단에 작품을 발표해 오고 있는 재미작가이다.
 
"오랜 시간을 미국에서 살았고
직업상 교포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 본
제 경험을 통해서
조금의 미화도 없고
조금의 비하도 없이 고백하듯
써냈습니다"
 
"<억새바람>을 쓰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솔직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었어요. 어느 사회나 어두운 부분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살아가는 모습이잖아요. 그런데 최근 한국내 매스컴이나 문학작품을 통해 보여지는 미국 교포들의 모습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더군요. 어두운 면이나 부정적인 면만 크게 부각된 느낌이었어요. 미국에 한두달 관광차 온 사람들이 미국 교포들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없고, 피상적인 것들이 본체가 될 수도 없어요. 함께 부대끼고 뒹군 자만이 본질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그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쓴 미국 극작가 윌리엄 포크너 이야기를 한다. 포크너가 일본에 얼마간 머물다 떠날 때, 일본 기자들로부터 일본을 소재로 한 장편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때 포크너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한 평생을 살았으면서도 자신이 살고 있는 남부지방을 대상으로 한 작품밖에 쓰지 못하는데 어떻게 잠시 일본에 머물렀던 경험만으로 작품을 쓸 수 있겠느냐."
김유미씨가 미국 이민세대들의 애환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뜻 구상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느 작가보다 그들과 가까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 자신 영어도 서툴고 모든 것이 낯선 땅에서 자신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눈물겹도록 몸부림치는 교포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가 미국에 정착한 것은 1963년. 이화여대를 졸업한 직후인 스물두살때였다.
60년대 초만 해도 미국은 젊은이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미국만 가면 마치 화려한 인생의 앞날이 보장되는 것만 같이 생각되던 때였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가 유학을 걸정하는데 어느 정도 작용도 했다.
하지만 그가 유학을 결심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통해 방송에 관한 것을 보고 자라면서 방송학을 공부할 생각이었어요. 한 3년 정도 공부하고 돌아오려고 했지요"
어린 시절 그에게 문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부친은 60년대 70년대 방송작가의 대부라고 일컬어질 만큼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던 극작가 김영수씨다. 40대중반이후의 올드팬 기억속에 남아있는 드라마 <박서방><마부><새엄마>를 쓴 작가다.
차 심부름을 하던 어린 딸이 습작을 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좋아한 부친은 정작 그가 대학시절 문단 등단을 서두르자 이를 말렸다.
 
문단데뷔 뒤로 미루고
방송학 전공차 미국 유학
 
"나이 어려서 등단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어요. 젊은 나이에 신춘문예 당선이다 추천이다 해서 등단한 작가들 중에 과연 몇이나 계속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느냐는 거죠. 공부를 충분히 하지않고 글재주만 가지고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젊을 때에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실력을 다져야하고 50대나 60대에 가서 한편을 써도 훌륭한 작품을 쓴다면 좋은 작가라는 거지요"
그래서 그는 등단을 미루고 유학길에 오른다.
시카고 근교에 있는 미드웨스트 브로드 캐스팅 스쿨에 등록을 했다. 그러나 희망에 부풀었던 유학생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서툰 영어로 실험실습이 주가 되는 학과정을 따라가는 것이 결코 수월치 않았다. 아는 사람 한명 없는 낯선 땅에서 겪는 외로움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그저 책과 씨름을 하면서 자신을 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남편 만나자 궤도 수정
29세에 대학원 학생 되다
 
그러던 중에 그는 지금의 남편 안영기씨를 만난다.
"결혼 당시 남편은 자신이 '가난한 고학생'아라고 했어요. 그때는 남편의 그 말이 참 낭만적으로 들렸어요. 그래서 가난에 대해 두려움없이 결혼을 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미국에 가면 파티만 있을 줄 알고 가져온 앙드레김 의상을 잘라 아이들 옷을 만들어 입힐 정도로 고생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바느질이란 것도 해보고요"
결혼과 함께 주부로 돌아와 두 딸의 어머니로 살고 있던 중 아이들이 성장하자 다시 공부에 대한 열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에 온 것이 가정주부로만 남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보람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공부가 교육학이었다.
미국에 온 지 7년이 지난 후에 내셔널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의 나이 29세때다.
낮에는 가정주부로 아이들을 돌보고 밤에 학교에 다녔다. 힘들었지만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행복했다.
"당시에 글을 쓸 수 있는 신문사나 잡지사의 직업을 찾았지만 교포사회가 지금처럼 크지 않았던 때여서 그런 직업을 구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미국인들과 경쟁해서 결코 뒤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 늦은 공부였지만 최선을 다했다.
5년만에 교사 자격증을 받아 공립학교 교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교사로서 활동을 시작한 70년대 중반은 본격적으로 한국인의 이민이 밀려왔던 시기여서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도 많은 한국 이민자녀들이 입학을 했다.
<억새바람>의 전반부에 나오는 문수와 진수 이야기도 실제의 교육현장에서 교사로서 경험한 일들이었다.
 
미국 와서 한국-한국인들을 새롭게 발견
<억새바람> 쓰면서 이민사 기록하는 느낌
 
 
"역설적인 이야기 같지만 미국에 와서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한국에서 본 것이라고는 대학을 다니면서 주위에서 본 사람들이 전부였어요. 만약 한국에 계속 살았다면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을 거에요. 중산층의 평범한 생활속에 살면서 밖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몰랐겠지요. 그런데 미국에 와서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났어요. 강원도에서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고향도 다르고 하는 일도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이런 이민자들을 만나면서 한국과 한국인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어요. 심지어 서울에만 살아 들어보지 못했던 지방 사투리를 미국에서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의 땅이 아닌 타국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그 하나하나가 작품의 소재였다.
그러자 어느 사이에 이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작가적 사명이 가슴에 움트기 시작했다.
한글을 잊지않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기려고 한 후더욱 절실하게 작품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문학 작품을 통해 알려지는 교포들의 생활상이 너무나 왜곡되어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미국에서 살았고 직업상 교포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본 제 경험을 통해서 재미교포들의 삶을 조금의 미화도 없고 조금의 비하도 없이 있는 그대로 알리자는 것이 작품을 쓰는 주된 동기가 되었어요"
작품을 드라마화 하겠다는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 기뻤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방송이 가지는 흥행성 때문에 작품이 굴절되어 표현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섰다. 제작진에게 당부했던 것도 교포들의 사는 모습을 과장이나 왜곡없이 있는 그대로 보아달라는 것이었다. 대중을 상대로 한 드라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흥미위주의 내용을 첨가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굴절만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억새바람>을 통해 인간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려 했다.
5공시절 해직되어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 이태섭과 그의 부인 그리고 주변의 인물을 통해 이민사회를 살아가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 인물들의 전형성으로 인해 시카고 이민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소설이 나왔지만 LA 뉴욕 등 한국인들이 사는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또한 한국 상인들과 흑인들의 갈등은 LA에서 흑인 폭동이 있기 이전에 이미 소설에서 언급한 내용이었는데 실제 상황으로 나타나서 작가로서 교포 사회 문제점에 정확하고 깊이 있게 접근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글을 쓰고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이외에는 별달리 취미가 없는 그는 음악듣기를 좋아한다.
 
글 쓰는 작업이 가장 행복한 순간
5공때 반정부 리스트에 오르기도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와 가사 일로 보내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서 글을 쓰는 작업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순간이라고 한다.
특히 <억새바람>을 쓸 때에는 학교에 나가기 때문에 창작에 몰두하지 못해서 안타까웠다고 한다.
"아침에 학교에 출근하면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어요. 그러면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 하고 나서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 8시쯤 돼요. 어떤 때는 일을 하면서도 글 쓸 생각으로 마음이 급해 가족들이 식사를 빨리 끝냈으면 하고 속으로 바란 적도 있어요. 한번은 <억새바람> 생각으로 가득한 채 콩나물 국을 끓인 적이 있는데 국에 넣어야 할 다듬은 콩나물은 모두 버리고 찌꺼지를 국에 넣었던 적도 있었어요"
글을 쓰면서 즐거운 기억도 많았지만 주인공 이태섭이 바람을 피어 아내가 나가고, 그런 아내에게 용서를 빌면서 돌아와 줄 것을 호소하는 내용을 쓸 때에는 몇번 씩 눈물을 흘렸다.
비록 소설속의 가상 인물이지만 이태섭을 비롯한 소설의 인물들 모두가 이민현장을 살아가는 실제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작가로서도 애착이 가고 이민사를 정리하는 느낌을 갖는다고 했다.
그는 <억새바람>외에 창작집 <보이지 않는 그물>, 수필집 <뜨거운 가슴으로>, <미국학교의 한국아이들>, 단편<사고>, <어느날 갑자지>, 평론 <미국속의 한인문학>들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 그물>이라는 단편과 현대문학지에 <토니 엄마>를 내놓았다.
두 달 후에는 장편 <첫눈>이 발간될 예정으로 있고, 현재는 <세인트 찰스 강변의 사랑>이라는 작품을 쓰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수필집 <뜨거운 가슴으로>라고 한다. 대작이라서 애정이 가기보다는 가슴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을 글로 남겨 가장 자신의 본 모습을정확히 보여 줄 수 있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 수필집에 나온 글들은 제가 어떤 사람인가를 가장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이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않았다'는 이유로 한때는 고국 비자를 받지 못했지만요. 타국에 살면서 고국을 그리며 염려하는 마음으로 글을 남겼는데 그것이 왜 반정부 작가로 오해를 받았는지 모르겠어요. 86년에는 야당지도자가 시카고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연히 제가 꽃다발을 걸어주는 모습이 미국 신문에 나오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어요"
 
생각을 넓혀준 땅이기에 고마운 미국
 
그는 한때 미국에서 한국의 인권 사항과 정부정책에 대한 의견을 '양심이 느낀대로 썼다'는 이유로 대표적인 반정부 인사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이 미국에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 미국에 와서는 '왜 왔느냐'는 회의가 심했고, '한국에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은 그에게 고정될 수 밖에 없는 생각을 넓혀준 땅이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저에게 속한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미국은 저에게 고마운 땅이었어요. 한국에서 보다 더 가깝게 한국인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그들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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