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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에세이 <東京 通信>
관리자 2007-12-08
戰線文學 제2집 P66 (1952? 10.)
東京通信 (제1信)   金 永 壽
 
假裝한 東京
 
終戰후의 동경은 확실히 미국 문화의 축소판이다.
긴자(銀座)를 걸어도 신주꾸(新宿)를 나가 보아도 우리는 그 어디서나
일본 고유의 물질문명이나 정신문화를 찾아 볼 수가 없다.
거리를 걸어가는 여성들의 복장이 그렇고 화장이 그렇다.
상점에 진열해 놓은 상품이 그렇고, 영화관들이 그렇다.
지난 번 우리 시인 金素雲씨가 이태리로 가는 도중 동경에 잠깐 들러
"부산거리에 범람하는 상품이 모두가 일본것이다" 이렇게 말했다지만
동경에서 일본을 말한다면 역시 이와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바로 이번 여름 긴자 노상에서 목도한 진풍경 하나를 소개함으로써 이 말은 입증 되리라 믿는다.
하루는 미국 여성 하나가 상체를 노출한 경쾌한 복장을 입고 거리를 걸은 일이 있다.
마치 해수욕복 같은 복장이었다. 아무리 국제도시인 동경이오 또는 세계의 유행이 직수입되어 횡행하는 銀座通이라 해도 이러한 노충증에 걸린 외국 여성의 해수욕복 같은 복장은 萬人 주목의 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유행을 무조건 숭배하고 珍技를 무조건 추종하는 동경 아가씨들은 곧 시간을 다투어 해수욕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 이런 일도 있다.
헐리웃의 영화배우 하나가 하네다 비행장에 모자를 쓰고 내린 일이었다.
그러면 벌써 그 이튿날이면 긴자 노상에는 모자 쓴 아가씨들이 범람한다.
모방을 좋아하는 일본 민족의 성격이 현대 같이 노골화한 적은 없을 것이다.
만약 이대로 몇 해만 더 일본 문화가 상승된다면 일본 古來의 '무사도'니 '야마토 정신'이니 하는 것은 그 흔적도 찾을래야 찾아 볼 수 없으리라 믿는다.
아니 일본의 표면은 벌써 미국 적으로 구라파적으로 假裝된지 오래다.
 
金日成 選集
 
일본의 출판계를 이야기 하려고 이 소제목을 설정한 것은 아니다.
일본 출판게에 침투하고 있는 북한 공산계열의 선무공장을 잠시 여기서 언급하고저 한다.
이름도 잘 모를 '조선인' 시인이 일본어로 시집을 발행하고 있다.
한국인이 아니고 '조선인'이라고 서점에서 선전하고 있는 이유는 즉 이 시인이 非공산계열의 작가라는 무언의 공고다.
<압록강>이란 적색시집이 공공연하게 발매되어 있고
<조선전선>이란 종군기행문이 도처의 서점을 장식하고 있다.
전3권의 <김일성 선집>이 속속 간행되고 있다.
더구나 놀란 것은 이들 서적이 모두가 호화로운 장정이고 유창한 일본어란 점이다.
공산주의의 조직적인 선전력을 나는 다시금 동경 한복판에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좌익 간행물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간행되었느지는 알리도 없거니와 조사를 할 수도 없다.
나는 서점에 들러 그러한 赤狗의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적마다 새삼스러이 고적감을 느낀다.
이러한 출판 행동은 결코 한 개인의 문학활동으로는 가능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작가의 문단적인 지위나 능력으로만은 용이하지 않은 것이다.
나의 억측인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국제적인 출판활동은 반드시 정치적 배경이나 출처 불명의 자금이 그 중추역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해 볼때 나는 다시금 한국의 대외적인 선무활동 출판활동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으로 구라파로 미국으로 우리들의 작가도 진출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말이다. 작가의 단독적 힘으로 부족하면 우리도 정부의 절대한 힘ㅇ르 빌리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정부는 현존한 작가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 말이다.
이제 우리의 한국의 문단은 <大邱的>이어서는 안된다. <釜山的>이어서는 안된다.
시인이 소설가가 극작가가 대구에서 혹은 부산에서 '거리의 고아'가 되어 정신적 방황을 계속하고 있을 때, 공산당은 그들의 가장 과장된 언어로서 일본어로 독일어로 영어로 선무공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종군작가를 일선에 내보내는 것만으로서 작가가 부하하고 있는 역사적 사명을 발휘케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우리들의 지도자가 있다면 이것은 커다란 오해다.
좁다란 허리띠 같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일본이 아직도 우리들을 "조선인"이라 호칭하고 "조선인'이면 모두 공산당이라고 오인하고 있는 성급한 일본인이 아직도 허다한 이유는 물론 일본인의 무지한 소치도 있겠지만, 한국의 국외선전이 너무도 침묵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일본인에게 중국인에게 불란서인에게 이태리인에게 우리 한국도 외칠 것을 외치자, 호소할 것을 호소하자.
<김일성 선집>이 한권 일본인의 서가에 꽂히는 것을 우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 있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김일성이는 우리들의 부모와 형제의 생명을 도살한 원흉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소설은 아무런 문학적 가치관도 없는 극히 통속적이며 비속한 연애소설만이라고 개탄하는 모 고고한 문화인을 대구에서 부산에서 가끔 만난적이 있다. 이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가도 먹어야 사는 것이다. 거리에 방출된 가난한 소설가에게 그 누가 어떠한 요구를 감히 할 수 있느냐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엔 벌써 김일성 선집 제2권 제3권이 출간되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한국은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침묵이 황금보다 중할지는 모르나 세상에는 황금보다 더 중한 다아이몬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의 다디아몬드는 언제까지나 땅속에 묻혀만 있을 것인가.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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