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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에세이 <신변상화>(中)
관리자 2007-12-08
조선일보 1940. 3.8
身邊想華(신변상화)  (中)   金 永 壽
 
粉伊
 
갓 결혼을 하여서는 단 내외 밖에 없는 집안이라고 별로 시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느 때는 도리어 주위가 고적한 감이 있어서 한걱정이었는데 처억 아이가 생기고 보니 우선 잔손이 많이 들어서 나보다 아내가 몇 곱절 분주히 구는 것을 본 나는, 어느 날
"우리 어디 가서 손때기 하나 얻어 옵시다"
하고 슬그머니 贊意를 구해 보았다.
나는 이 말을 꺼내면서부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물론 아내는 찬성하리라 하고 짐짓 기꺼운 생각을 품었던 것이다.
"온 별소릴 다 허우. 그 까짓 것은 갖다 두어 뭘 허우, 되레 말이나 일리지"
하고 남의 호의를 곧장 받아주려 하지 않는데는 나는 약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침 저녁으로 아이 때문에 시달려서 밤이 되기 무섭게 그냥 아무데나 쓰러지면 쓰러진 그대로 곯아 떨어지는 그의 피곤한 정상을 매일 같이 목도하는 터라 그가 무슨 말로서든지 완강히 항거하더라도 나는 일단 정한 결심을 결코 변경하지 않으리라 하고 다시 자세를 바로 잡고,
一曰(주: 일왈=첫째) 손때기를 둠으로써 주부의 노동력이 얼마나 감소된다는 事理며,
二曰  아이를 기르는데 손때기가 얼마나 필요하다는 연유를 하나하나 알아듣도록 설파하여 결국 그날 밤에 가서야 아내의 입으로부터,
"그럼 어디 두어 봅시다그려" 하는 항복을 받고야 말았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 일찍이 직업소개소로 가서 구해 온 것이 분이(粉伊)라 부르는 열 여섯 살 된 嶺南 아이였다.
분이는 오던 첫 날부터 며칠이 지나도록 통 말이 없었다.
서울로 단신 뛰어 올라와서 그 동안 어느 고무공장에서 여공 노릇을 하다가 너무 일이 심하고 고되어서 이번에는 남의 집이나 살아볼까 하고 방향을 달리하고 나섰다는 것을 그것도 아내를 통해서 들었을 뿐이지 직접 분이한테서는 아무런 말도 듣지 못 했을 뿐 아니라 또 아이가 겉으로 보기에도 무척 진중해 보이고 간혹 물 한 그릇을 떠오라 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냥 밖에서 물 그릇만 쑥 들이밀고 피하다시피 해서 부엌으로 들어가 숨으므로 나 역시 분이에게는 짐짓 말을 붙이려 들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끔 아내는, 온 한솥에 밥을 먹으면서도 도통 말이 없으니까 꼭 싸움난 집안 같다고, 불평을 호소해 왔으나, 나는 그럴 적마다 말이 많아서 시끄러운 것보다 그게 도리어 낫다고 우기다시피 해서 되도록 분이의 옹호파가 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가 와서 한 보름 지냈을까 어느 날 저녁 찬꺼리를 사오라고 5원짜리 한장을 주어서 심부름을 보냈더니 나간지 두어시간이나 되도록 분이는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시골 아이가 되어서 길을 잃어버린게지 하고 아내가 몹시 불안해 하는 기색을 나는 본체도 않고 자못 의연하게 기다려 보았으나 아내가 저녁상을 보아가지고 들어 올때까지 분이의 소식은 없었다.
아마 그 돈 5원을 가지고 달아났나 보다----아내도 나도 나중에는 우연히 이런 결론을 제각각 얻게 되었고, 일이 이렇게 되니까 아내는 여지껏 그 애 편이 되어온 나를 그르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는 용이히 그의 앞에 설복하려 들지 않았다.
그 보다도 나는 아내와는 반대로 그의 거취를 무척 궁금히 여기고, 아무래도 집을 못 찾고 헤매다가 지금쯤은 어느 파출소에 붙들려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내일 빨리 수색계를 제출하자고까지 주장하였다. 마악 상을 물리고 社로 나가려고 옷을 입으려니까 누가 밖에서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일찍 찾아 올 사람이 없는데 하고 나가 보니, 그는 언뜻 흰 양복 저고리에 게다를 신어 빠나 식당의 쿡으로 밖에는 안 보였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구뻑 절을 하더니
"저...요 아래 식당에서 왔는뎁쇼, 저...분이가요, 어저께부터 저의 집에 있게 돼요, 그래서 옷보퉁이를 가지로 오래서요. 그래서 왔는뎁쇼"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동안 말이 막혀 멍---하니 서서 어쩔 줄 몰랐다.
요 아래 식당이라면 바로 이 동네에서도 추잡하기로 소문난 그 술집이 아닌가.
나는 아무 말 없이 아내를 시켜서 분이의 옷 보통이를 내다주라 이르고, 그리고 분이의 심부름을 온 그 사나이를 그냥 문깐에 세워 놓은 채 희적희적 바쁜 걸음으로 골목 저편을 향해 나가 버렸다.
#김영수 에세이 <身邊想華>(上)
#김영수 에세이 <신변상화>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