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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에세이 <身邊想華>(上)
관리자 2007-12-08
조선일보 1940. 3.7
身邊想華(신변상화)  (上)    金 永 壽
 
老 齡
 
가끔 전부터 감기나 몸살 같은 것으로 이틀 혹은 사흘씩 자리를 잡고 누우셨다가는 다시 용이하게 일어나시어 아무렇지도 않으셨으므로 나는 이번에도 社로 누이가 전화를 걸고 아버지의 병환을 고하여 왔을 때에도 그저 노령이니까 하고 信之無意 하고 며칠을 지냈다.
그러자 어느 날 오후 누이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병세가 아무래도 심상치않으시니 社에서 나오는 길로 곧 집으로 오라는 것이다.
이러한 보고를 받자 본시 성미가 느긋한 나도 정말이지 손에 일이 잡히지 않고 마음과 몸이 함께 들먹거리어 고스란히 앉아서 하던 일을 계속할 수는 도저히 사정이 허락치 않았다.
퇴사하는 길로 나는 광화문 碑閣 모퉁이로 나와 우선 눈에 뜨이는 아무 병원이나 뛰어 들어가서 의사를 찾아 왕진을 청하였다.
의사가 탄 인력거 뒤를 따라가면서 나는 가장 불길한 생각만 추려 하기에 걸음이 제대로 걸려지지 않고 눈 앞이 아득아득 하여지는 것을 억제할 수 없어 공연히 헛기침을 하고 종종 걸음을 쳤다. 그리고 아무쪼록 지금 내가 이렇게 뒤를 밀다시피 해서 데리고 가는 의사의 진단이 분명히 나고 주사의 효험이 있기를 빌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도 나에게 대하여 가혹하였음에 어머니와 누이와 아내가 조용히 들어앉은 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큰 소리를 치고 말았다.
기관지 폐염 ! 이런 말을 던지고 의사는 극히 익숙한 솜씨로 주사를 놓고 돌아갔다.
팔을 걷어 올리고 가슴을 이리저리 헤치고 등을 두드리고 하여도 아버지는 쉽사리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듯 그저 아무가 어떻게 하든 전신을 함부로 내맡기고 있는데도 나는 더욱 마음이 쓸쓸하여졌고 누이는 고개를 저쪽으로 향하고 소리를 죽여가며 울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나는 곧 <에끼호쓰>를 사 오래서 찜질을 해드리고 병원에서 약을 지어다 물약 가루약을 번갈아서 드리도록 서둘렀다.
밤이 되어도 병세는 조금도 덜함이 없었고 열은 오르락내리락 하여 옆에 사람들은 단 10분도 마음 놓고 눈을 붙이지 못하고 새벽까지 그냥 앉은채로 고스란히 밝히고 말았다.
훤히 동이 트자 아버지는 비로소 어제 내가 의사를 데려다 주사를 놓아 드린 것을 깨닫고, 한의를 부르지 왜 양의를 데려왔느냐 책을 하시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관지 폐염이라고 진단이 내렸음에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주사 맞고 찜질을 하고 그러는 일방 부지런히 약을 쓰는 것이 상책 같아서 한의를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엊그저께 蔘든 약을 써서 병이 이렇게 덮쳤으니 이것은 아물도 한의를 불러다가 蔘毒을 풀 약을 써야지 양의 따위로는 안된다고 하시며 가루약을 권하는 내 손을 뿌리치시고 머리를 저쪽으로 애써 돌이키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날 하루는 이렇게 전 가족이 제각각 불안한 마음을 품고 또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나는 버티었다. 혹시 친척 중에서 한약을 권고하는 사람이 있어도 나는 완강히 거절하고 오직 내 생각 내 주장대로 간병의 방침을 세우고 규칙적으로 모든 절차를 진행하기에 조금도 내 신념을 굽히거나 꺾지 않았다.
아버지의 요구대로 지금 의사를 갈아 댄다는 것은 아무래도 병환을 더 위급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 같아서 좀처럼 결심이 돌아서질 않았다.
그날도 밤이 이슥하자 아버지는 의사의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충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리신다는 가슴을 두손으로 마구 부등켜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한약국을 가겠노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면 그래도 막았다. 나중에는 매달리어서 서글픈 표정을 하고 부디 안정해 주시기만 빌었다. 그러면 그대로 아버지 편에서는 소리를 질렀다.
턱 턱 가래가 막히는 가슴 속에서 간신히 나오는, 그야말로 최후의 전노력이 집중된 무서운 고함을 들음에, 나는 너무도 신념을 가지려 하시지않는 자신의 병세에 대한 아버지의 불성실하신 태도가 원망스럽게 생각되어 꿀컥꿀컥 울음이 치받쳐 올라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나는 이 밤중에 나가시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마지막에는 죄송하나마 완력으로 아버지의 전신을 억압하고 다시 아까 같이 자리에 눕게 해드렸다.
이튿날 아침 5촌이 한의를 데리고 와서 아버지의 맥을 보고 아내가 마루에서 한약을 끓이느라고 부산을 피울 때, 나는 어제 같이 아무런 거절도 반대도 않았다. 도리어 그들의 그러한 노력이 고맙게 생각되어 나는 나도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혼자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았다.
그리고 어제 새로 지어 온 양약 봉지를 나는 손수 주섬주섬 걷어 모아서 아버지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처치하려고 빈 설합을 찾았다.
 
*김영수 평론 <연극계 1년 총결산>
#김영수 에세이 <신변상화>(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