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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평론 <歷史物의 대두>
관리자 2007-12-08
朝光 1940년 8월호 p106
상반기 결산 보고서> 劇壇 總評--------金 永 壽
 
歷史物의 대두 (연극)
 
연극계의 상반기 결산이란 이토록 허무한 것인가.....
나는 막상 붓을 들고서야 통감했다. 신극의 질식은 작년이래 계속하는 것이니까 재삼 이곳에서 새삼스럽게 논위 하고저 하는 것은 아니나 이것에 대신해 등장한 새로운 단체나 또는 재래의 고유한 형식을 답슥해 내려오는 소위 흥행극 단체의 활동도 昭和 15년도 상반기에 있어서는 아무런 기록적인 결과를 표시 못했다는데 이 글의 무기력한 피리어드는 찍히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왕 판을 벌리고 하자면 아주 없는 이야기도 아니고 하니 몇 가지 추려 가지고 말해보기로 한다.
 
'高協'의 <春香傳>
 
창립공연에 있어서 활발한 기세를 보이고 무대의 새로운 앙상블을 목표로 박영호씨 작 <정어리>를 들고 나왔던 극단 '고협'도 오직 <춘향전>을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춘향전>이 신극인에게 또 흥행극인에게를 불구하고 이 같이 후대를 받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극본 그것이 가지고 있는 흥행상 안전성이란 말을 나는 여러군데서 들은 일이 있다. 그러면 <정어리>를 들고 나왔던 '고협'도 결국 이런 이유에서 잠시 "흥행상 안전성"이 있는 레파토리를 선정하였다고 선의로 해석해둠이 타당하지 않을까.
신극 전반이 활동을 정지하고 침착히 기회를 대망하고 있을 때 우리는 목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력한 단체주에서 '고협'으로 하여금 현재에 자유로 움직일 수 있는 準신극단체라고 생각하고 지지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준 신극단체'의 準이란 문자가 불유쾌하다 해도 사실 지금의 그들의 선정방법과 태도와 연기의 시스템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이만한 것은 피차간 이해가 있어야 될 줄 안다.
이미 매력과 선전효과를 상실한 <춘향전>은 백번 해서 백번 다 성공한댔자 수지예산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흥미없는 '대성황'임에 틀림없다.
지방적으로도 강열한 팬을 흡수하고 있는 '고협'으로서 중앙공연 역시 이 같이 타산적으로 너무나 타산적으로 이행하였다는데 나는 불만을 갖는 동시에, 고협에 금년도 상반기에 있어서의 성적은 확실히 열등생의 성적표에 비견한다는 것을 동극단의 맹주격인 沈影, 朴昌煥, 朱仁圭등 3씨는 잠시 극단 창립당시로 돌아가 깊이 깨달을 바 있어야 될 줄 안다.
산적한 극단내부의 명일의 방대한 역사는 금일의 사소한 일점으로부터 출발된다는 것을 고협의 전원은 중앙공연을 할 때마다 생각해 주기 바란다.
 
'아랑'의 <金玉均>
 
한 달에도 다섯 번 내지 여섯 번씩 프로를 바꾸어가며 꾸준히 연극만을 해나가는 동양극장에 대해서 관객은 이미 숙련되었으니까 좀처럼 경이적인 것을 들고 나오기 전에는 그들은 별로 이상해 하거나 대수롭게 생각지 않는다.
이와 동일한 이유로서 한동안 제일극장의 협소한 무대를 빌어 가지고 장기로 혹은 단기로 흥행을 하는 새로운 극단 '아랑'에 대해서도 관객은 아무런 비약적인 흥미나 흥분을 못 느꼈다. 그러다가 임선규씨 작 <김옥균> 전후편을 들고 당당히 부민관으로 진출하며 연 5일간 續演을 하였다는 데는 우선 그들의 침착한 극단 공세로 보아 勳一等의 공로를 아니 줄 수 없다.
'아랑'의 <김옥균>은 금년도 상반기에 있어서 극단 전반을 통하여 승리자였다.
물론 <김옥균> 일편만을 단독히 비판하고 검토할 때 그야 각인각색으로 의견이 백출되겠지만 이 글의 타이틀이 명하는 바, 상반기 결산서를 꾸밈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어느 극단보다도 '아랑'의 <김옥균>을 나는 최고의 채점을 하고 싶다.
언제나 채점자의 태도는 여러가지다. 그리고 비밀이다.
발표되는 것은 결과뿐이고 과정이 아니다. 허나 여기에 채점자로서의 본령을 떠나서 몇 가지 고백을 하자면 우선 각색에 있어서 풍족한 사료의 힘을 빌지못한 채 그래도 幕과 幕 사이에 간간이 년대와 그 당시 급박한 風雲을 넣어가며 6막 9장이란 장편物을 끝까지 보고 일어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끌고 나갔다는 게 우선 이야기의 하나다.
그전 신극이 한참 왕성하고 번역물이 유행하던 시대 그때에도 항상 연극인들 가운데 이야기 되던 것은 역사물이었고 그중에서도 李朝 末葉의 史劇이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야기는 이야기로서 유산되었고 무대에 올려보지는 못했다.
이러한 감회를 가지고 아랑의 <김옥균>을 본다면 문제는 또 하나 새로운 것을 우리는 추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극작가와 사극의 관심' 혹은 '역사극의 정리'----제목은 아무래도 좋다.
여하튼 오늘에 우리들이 가진 유능한 극작가가 지금껏 처녀지이던 사극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는 것은 어느 의미로 생각하든지 하나의 플러스가 아니면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임선규씨는 금년도 상반기에 있어서 행운아였고, 동시에 극단 '아랑'은 劇壇 전체의 챔피언이었다.
 
'조선무대'의 <金笠>
 
마침 이 글을 쓰기 수일전 나는 기회를 얻어 조선무대의 창립공연 <김 삿갓>을 가 보았다. 아마 내 기억이 틀림이 없다면 이상에 말한 고협의 <춘향전>과 아랑의 <김옥균>과 조선무대의 <김삿갓>등 세 무대가 금년도 1월부터 6월까지에 있어서의 극단전체로 보아 기록적인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조선무대는 금년 5월경에 비로소 새로이 결성된 집단이다. 그리고 방금 제1회 공연으로서 송영씨 작 <김삿갓>을 올리고 다음 상연물로서 거리마다 <춘향전>의 광고를 붙여 놓았다. (아마 이 글이 발표되었을때는 춘향전도 상연되었을 것이나---)
그리고 이 새로운 집단의 경제적인 배경으로서는 조선영화 주식회사의 사장 崔南周씨란 설도 있고, 또는 씨와는 단지 우의적관계만 맺고 창립당시에 일금 5천원만 융통하여 주었다는 설도 있어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들은 것을 전부 정리한다면 아무래도 후자의 5천원 융통설이 사실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나 그야 가깝든 멀든 이 이야기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으니까 그만 두지만 하여간 아무런 넉넉한 경제적 배경을 의지하고 조선무대가 결성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극단을 운전해 나아가는 멤버로서는 우선 연기자 진용만 보더라도 오늘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全 朝鮮의 모든 극단중에서도 가장 우수하고 가장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지면관계로 개인의 이름은 밝히지 못하나 조선무대에는 재래의 극연좌에서 수련을 쌓은 사람도 있고 낭만좌와 또는 협동예술좌를 거쳐나온 야심만만한 신인도 많다.
뿐 아니라 청춘좌나 호화선으로부터 언제나 그곳에서 제일선으로 내세우던 스타를 픽업했다는데 조선무대의 금일의 자긍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연기자나 화장실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마땅히 본궤도로 들어가 금년도 상반기에 있어서 극단 '조선무대'가 얼마마한 공과를 지었나 하는데 있을 것이다.
나는 우선 그들의 성적표를 작성하기 전에 등락을 결정하는 공란에다가 의문부를 찍으려 한다. 그들이 창립공연 <김삿갓>이 성공을 하였건 실패를 하였건 하여튼 나는 지금에 있어서 의문부를 쳐놓고 생각하려 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다만 창립공연 하나만을 가지고 그들의 창창해야 될 내일의 진로를 운위하고 싶지 않은 나의 겸손에서다. 허나 곧 이어서 <춘향전>을 또 들고 나왔다는 것은 '고협'과도 또 다른 의미에 있어서 조선무대는 적지 아니 그들의 본의와는 벗어난 오해를 일반 뜻있는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극 인물 중에서도 가장 취급하기 난삽한 인물을 당당히 창립공연에 들고 나온 대담성에는 놀랐다. 그리고 긴 시일을 두고 체계를 쌓아 연출자 아래서 순종하는 유순한 태도에도 고마웠다. 이것은 전부 그대로 무대에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창립공연이란 단원 전부의 긴장도 컸겠지만 그 반면에 각 극단으로부터 모인 소위 대간부가 각자 스스로 개인적인 혹은 이기적인 욕망을 억압하고 오로지 새 극단 '조선무대'의 신인이 되어서 돌진 하였음에, <김삿갓>은 소기 이상의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김삿갓>은 분명코 최종의 상반기의 극단을 유쾌롭지 못하게 한 하나의 명예롭지 못한 등장이었다.
 
지방 극단의 중앙진출
 
결론으로 넘어가 이야기를 마감하기 전에 여기서 잠깐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지방에 있는 우수한 극단의 중앙진출이라는 것이다. 6월 중순경에 東劇에 내연한 平壤의 '老童座'가 그것이다. 洪開明씨 작 <백일홍>이란 각본과 그 전 동극에서 명성을 떨치던 崔仙양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서울로 올라와 수지상으로 실패는 하지 않았다.
지금껏 京城에 근거를 둔 유력한 단체가 전조선을 순회하는 것은 항다반사였고 하나의 습관이었다. 그러나 지방의 단체가 경성으로 올라와 청충좌나 호화선과 어깨를 가즈런히 하여 본격적 대중극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전에도 때때로 가다가 藝苑座니 뭐니 하고 府民館(주: 현 서울시의회건물)에서 며칠씩 흥행을 붙인 일이 없지 않아 있다. 허나 그것은 그야말로 경성이 이미 시인하고 있는 대중극 이하의 레벨이었고, 단지 요행을 바라는 경품을 뽑는 심리가 다분히 있었다.
이번 노동좌도 특별히 이런 카테고리에서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대중극이나마 중앙이면 중앙의 정도에 맞게 각본이나 연기자를 준비해 가지고 왔다는데 얼마간 그러한 무대를 보아오던 관객으로서는 허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시에 여기서 우리가 새로이 하나 생각할 문제는 지방극단의 중앙진출이 빈번하여짐에 따라 중앙극단의 철저한 각성과 발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그러한 실증이 없다면 중앙극단은 미구에 지방극단에게 엄습을 당하고, 그들이 진지는 점령되고 심지어는 중앙의 운집해있는 흥행극단 전부가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結語
 
이제 매수도 다 된 것 같다. 간단히 이야기를 줄여 끝막기로 하자.
작가의 전체적인 전향이라고 까지는 생각되니 않는다 하더라도 하여튼 금년도 상반기에 있어서 극단은 확실히 하나의 질서를 무의식중에도 찾아 헤매었다.
그것은 역사物의 대두로서 나타났다.
고협의 <춘향전>이나 아랑의 <김옥균>이나 조선무대의 <김삿갓>은 이상하게도 판이하게 색채가 다른 세 극단이면서도 동일한 계열에 정열할 수 있는 역사물을 각색해 가지고 들고 나왔다.
그들이 일부러 창작을 피하고 이 같은 도리어 손대기 어려운 사극을 편성해 가지고 나왔음에는 각각 그들로서의 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나 그러나 이것을 통틀어 한 곳에 모아놓고 생각할 때, 우리는 이곳으로부터 즉 이러한 레파토리의 선정으로부터 여러가지 그들이 내면적인 이유를 넉넉히 추정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선 그 1은 늘 그것이 그것 같은 대중물에 이미 권태를 느끼기 시작한 관객을 다시금 새로운 무엇으로든지 붙잡자는 야심일 것이고,
그 2는 자료의 빈곤과 생산과잉으로부터 온 작가적 피로로부터 일시 휴양을 하자던 그릇된 심산이었을 것이고,
그 3은 극단과 극단 사이에 일어난 경쟁심리에서였을 것이다.
하여튼 이상의 어느 것이든지 또는 이상의 아무런 이유에서가 아니든지 오늘의 극작가가 피로를 느끼고 있는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상반기는 역사물의 각색으로 막을 닫았으나 하반기는 현대물의 각색으로 역시 작가는 오로지 금년 일년간의 휴양을 무언중에 선언하게 되지 않을까----결산 보고서의 備考 셈으로 한마디 해둔다.
 
 
 
 
*김영수 평론 <劇界의 1년간>
*김영수 평론 <연극계 1년 총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