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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평론 <창작 月評 릴레이>
관리자 2007-12-07
조선일보 1939. 10. 13-14
創作 月評 릴레이-------(3)    金 永 壽
主題의 적극성과 풍자.....無影의 <제1과 제1장>과 <도전>  (上)
 
작가 無影(주: 이무영)은 너무나 오랜동안 침목을 고수한 작가다.
이러한 작가의 단편을 한달에 두 편씩이나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확실히 나의 큰 기쁨이었다.
<제1과 제1장>(문인평론 창간호) 과 <도전>(문장 10월호)를 읽고 나서  채 감격이 사라지지 않은 지금에 이러한 기회를 타서 작가 무영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역시 무거운 책임이나 나로서는 적지아니 기쁜 성사다.
<제1과 제1장>은 작자의 附記와 같이 농촌을 주제로 한 어떤 장편의 서곡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서곡에서 시작되고 또한 서곡으로서 끝난 작품이 끝까지 매력을 가지고 읽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는 여기서부터 작가 무영의 단편작가로서의 기교를 생각하려 하였다.
불행히 李씨의 과거에 전작품을 계열적으로 연구하지 못한 나로서는 이번의 氏의 二作으로 하여금 형상에 있어서나 혹은 내용에 있어서나 충분한 분류와 동시에 그의 작가적 성장과정에 비추어 확실한 단언을 할 수는 없으나, 李씨는 정녕코 풍자문학의 신경지를 손쉽게 개척할 수 있는 풍부한 소질을 가진 작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제1과 제1장>은 金南天씨의 말하는 바, 고발의 정신이 전면적으로 노출된 단편일지도 모른다.
도회에 시달린 文靑 수택이라는 청년을 그의 대변자로 내세워 가지고 농촌으로 끌고 가서 흙과 친하도록 모든 노동을 강요한 후, 결국에 가서는 <지처 자식>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마는 李씨의 태도는 우선 처음부터 냉정하였다. 이러한 냉정한 태도를 끝까지 상실치 않고 순서를 밟아 이야기를 전개하여 나갔음에 李씨는 첫째 구성에 있어서 면밀하였고 간간이 풍자적 묘사를 자연스럽게 삽입하리만치 氏는 여유가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오늘의 우리의 창작계가 외계의 선전과 비추어 너무나 내용이 빈약하다는 평을 받는 것은 물론 여러가지의 내놓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있겠지마는 나는 첫째 그들 기성이나 중견이 오늘에 그들이 당면한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고 극히 소극적인 또한 신변잡기적인 작품을 濫造하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저윽이 오늘의 우리의 문단을 조금치라도 생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서운하게 만들어 마지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회를 버리고 농촌으로 내려가기까지의 심리의 변천과정이라든가 농촌에 있어서 흙을 진심으로 친하고저 하는 의용의 근원을 좀 더 깊게 파고 들어가서 묘사하였더면 하는 부족감이 떠오름에도 불구하고 역시 10월 창작진에서 단연 제1위를 점령하여 부족치않는 <제1과 제1장>은 무엇보다도 작가가 개척하여 택하였고 냉정히 묘사하고 해부한 주제의 적극성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지금 지적한 주제의 적극성이란 금일의 우리가 똑같이 직면한 방대한 역사적 사실을 전제로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세기의 작가나 또는 작가이외의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影子를 한번 돌이켜 반성하여 보고 동시에 자신을 스스로 비판하여 보는 것도 하나의 생황의 진지한 태도가 아닐까. 문장이나 語句에 있어서 농후하게 자연주의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것도 역시 작가 무영만이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매력이 아닐까.
역시 무영은 소설을 써야 되고 그 중에서도 자연주의의 소설을 계승해야 되고 그리고 풍자문학을 개척해야만 할 작가다.
이것은 <제1과 제1장>을 읽고 나서의 나의 숨김없는 느낌이었다.
다음에 <도전>으로 이야기를 전환해보자.
 
진지한 1인칭 소설
무영의 <제1과 제1장>과 <도전>   (下)
<도전>은 나 는 결핵병 환자인 중학교 교원의 입을 빌어 육체적 혹은 정신적 퇴폐로부터 무한히 이탈하고 극복하려는 정열과 고민을 그린 1인칭 소설이다.
1인칭 소설이 결과하는 결함을 우리는 여지껏 여러곳에서 지적하여 왔다.
첫째 나 라는 일방적인 인물로서 사건을 구성하고 스토리를 전개하여 나감으로써 관찰과 묘사에 있어서 강력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자칫하면 주관적인 혹은 피상적인 안일한 묘사나 서술에 경도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李씨의 <도전>은 우선 이러한 상식적인 오류를 범치 않았음에 전편을 읽고 나서도 나는 자못 유쾌하였던 것이다.
장군이란 전형적인 인물을 창조하여 놓고 거기에서 새로운 오늘의 유형적인 성격을 묘파하려는 작자의 진의가 작품 후반에서는 농후하였으나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형식을 갖춘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아니한 관념적인 도전적 태도에만 시작하였음엔 평탄평이한 문장의 매력에 비하여 약간 서운한 생각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나 작가 무영이 이 작품으로 하여금 살과 뼈를 붙여놓고 불행히 생동하는 호흡을 불어넣지 못하였다고 나는 감히 <도전>을 들어 평가를 저하시킬 이유는 갖지 못한다. 나 라는 중학교원의 성격이나 생활이 명확하게 浮影되어 있지 않은 아까운 결점이 있는 반면에, 장군이라는 고민하는 성격은 가장 우리를 젊은 제네레이션에게 환심을 사고 흥미를 가지게 할 수 있는 말하자면 금일의 테마가 아닐까.
<제1과 제1장>에서도 느낀 바이지만 李씨는 풍부한 어휘로 인해서 묘사에 있어서 충분히 平易를 느끼는 것 같은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기에 만족하여서는 작자 자신을 위해서보다도 독자를 위하여 얼마든지 불안할 것이다.
가령 "그 얼굴은 성난 사자를 만난 타잔과도 같았다" 라든지 "가까이서는 갈매기가 멀리서는 뻐꾸기가 가끔 복음을 넣는다" 등의 묘사는 얼마큼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
산문체의 소설이 하나의 유행성을 띄우고 금일의 문단의 일각을 점령하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 李씨가 계승하려는 자연주의 수법이 과연 어떠한 완성의 길을 개척하여 나아갈는지 의문이나 氏의 풍자가 묘교하게 삽입되지 못하는 때에는 불행히 담담한 묘사 과식에만 피로하지 않을까. 이 역시 어줍지 않은 나의 속단이기를 바라마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상의 두서 없이 열거한 묘사상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읽고나서 그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느끼게 하고 생각케 하는 것은 李씨가 온갖 정열을 경주하여가며 탐구하려는 새로운 성격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성격, 즉 <제1과 제1장>의 '수택'이나 <도전>에 있어서의 '나'나 '장군'이나 이제 우리가 세삼스럽게 찾아낸 특수한 성격은 아닐것이나, 그러나 이만치 오늘의 세대로 꿰뚫고 뛰어들어 가슴을 활짝 펼치고 고뇌할 줄 알고 격분할 줄 아는 인간을 노출하였음에는 비로소 오래간만에 대하는 내용의 참신성이 아닐까.
같은 달에 발표된 두 작품이 모두 이러한 고뇌의 포장을 쓰고 나왔다는 것은 오랜동안의 본의 아닌 職을 辭하고 붓대를 잡은 작가 무영의 정돈된 두뇌와 과x한 정열을 대면할 수 있었음에 같은 대오에 참여한 우리로서는 여간 통쾌한 것이 아니었다.
소설을 쓰고 싶어 쓰는 작가와 또는 마지못해 쓰는 불충실한 작가의 두 계급이 구별될 수 있다면 현재 권토중래의 발랄한 기상을 가지고서 <제1과 제1장>과 또는 <도전>을 동시에 터트린 李씨는 응당 전자의 우대받는 계급으로 좌석을 꾸며야 될줄 안다.
작품의 세세한 분석을 피하고 다만 총괄적인 평아닌 평을 시험았음은 우선 잃어버렸던 견실한 선배 한 분을 찾아냈다는 환희에서 의식적으로 그리 하였음을 끝으로 고백하여 둔다.
 
 
*김영수 평론 <나의 문단 타개책>
*김영수 평론 <劇界의 1년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