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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평론 <나의 문단 타개책>
관리자 2007-12-03
동아일보  1938년 9월 13, 15, 17일 3회 연재
<新人은 말한다>--------희곡문학----金 永 壽
 
나의 문단 타개책 (上)
 
1) 희곡의 문학성과 연극성
나는 지금 창작희곡의 빈곤을 어떻게 타개해야 좋을까 하는 극히 일반적이면서도 시급히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논리에 봉착하고 있다.
여기에 말하는 창작희곡이라는 것은 물론 현재 조선의 저널리즘을 기조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만큼 이야기는 사람과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나누어지고 또는 자연 나누어져야만 된다.
나는 다만 이 許與된 좁은 紙面에서 여러갈래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의 일단을 개념적으로나마 문제화함으로써 책임을 면하려 한다.
희곡은 극장을 예상하지 않고는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은 벌써 우리들에게는 하나의 상식화된 이념이다. 더구나 이 이념이 가장 진실하고 건전할수록 우리들은 경의와 존대를 아껴서는 안된다는 것도 잘 아는 상식의 하나이다.
일반문화의 발전과정에서 우리는 그 문화가 계승해 내려오는 전통이라는 힘을 소홀히 하지 못한다.
우리의 新劇은 古典을 가지지 못했다. 아니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진것이나마 그 가치에 대한 인식이 성실치 못했으므로 고전은 고전대로 化石이 되고 말았다. 화석이 된 고전이 신극의 萌芽를 돌보아 줄 리는 없다.
고전이 없이, 전통이 없이, 말하자면 이렇다 할 유산이 없이 오늘의 신극은 저 혼자 제길을 개척해왔고 개척해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의 첫 희생자로서 土月會를 꼽게 된다.
그러나 토월회도 연극사에 있어서는 단지 한 페이지의 스페이스도 요구할 권리를 스스로 상실하고 말았다.
외국의 명작을 소개하는 것도 물론 우리는 그 문화사적 意義를 높게 평가해야 된다. 그러나 이것은 恒久的이며 절대적은 아니다. 그리되어서는 안된다.
토월회가 남긴 섭섭한 기억은 여기에 있다.
요약해 말하자면 우리의 신극은 신극으로서의 정열적인 기치를 들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필요로해야 될 그 무엇이 마이나스되고 만 것이었다.
그 무엇이란 창작희곡이었다.
이렇게 불운한 세대에서 겨우 겨우 지금까지 命脈을 이어 내려온 창작희곡을 우리는 어떻게 무슨 방편으로 문단적으로 또는 극장적으로 융성을 도모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희곡작가는 먼저 극장으로 돌아가자 !
작가는 원고지와 잉크를 준비하기 전에 먼저 극장으로 가자 !
그리고 무대를 배우자, 알자 !
이렇게 선언한다면 누구는 극장다운 극장으로 인도하라고 반문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반문을 이 글을 구상하면서부터 가장 두려워한 하나의 중심적 테제였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우리는 우리들의 극장을 불행히도 소유치 못했다.
이것은 공통된 우리들의 고민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의 희곡작가들은 天才가 되어야 한다.(나는 감히 천재라고 서슴치 않고 외친다).
컴머셜리즘이 범람하는 무대에서도 우리들의 양심적인 극작의 공부가 게을러서는 안된다. 한달에 1회나 두달에 1회쯤일 수 밖에 없는 신극의 무대에서는 우리들은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정력적으로 공부를 되풀이 해야만 된다.
이렇게 소극적으로나마 가장 가능한 범위 안에서 우리들의 양심적 극작가들은 일시라도 두뇌를 쉬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우리들이 다 같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겪어나갈 숙명적인 노동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문단에서 특히 창작희곡의 지위가 저하되고 무시되어 있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무엇보다도 강력한 원인은 희곡작가의 너무나 무기력에 있다고 본다. 여기에 말한 무기력이란 작가의 탐구성을 말함이다.
무대를 알고, 무대를 배우고, 그리고 무대의 리얼리티를 탐구하는 극히 생리적인 결함에 있다고 나는 생각된다.
저널리즘에서 학대를 받는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참으로 무대를 알고 드라마투루기를 아는 작품이라면 우리는 직접 무대로 移植할 수 있다.
이만한 무대쯤은 우리에게 現今 허용되어 있는 기관이다.
창작희곡의 빈곤은 제일 먼저 그 책임을 작가 스스로가 져야 된다.
그리고나서야 다른 문제도 논의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우리들은 이론을 떠나서 실제적으로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나의 문단 타개책(中)
2) 신인은 문단으로 보다도 극장으로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 창작희곡이 빈곤한 제일차적 원인을 오늘의 우리들 희곡작가 스스로가 책임을 진다고 하면 이로부터 본론의 논리적 전개는 매우 평이하게 된다.
첫째로 우리들이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될 것은 무엇보다도 저널리즘이다.
오늘의 저널리즘은 공포와 불안 그것이다.
물론 이 공포와 불안이 어디로부터 基因되었는가를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학 일반이 散文化해야만 되고 去勢를 당해야만 될 이유는 어디 있을까.
文藝時評이나 創昨月評에도 희곡이 끼어 보기란 그야말로 우연 같이 되었다.
몇 개 안되는 월간 잡지에도 매월 소설이나 雜文은 目次에서 빠지지 않지만 희곡이란 타이틀은 가뭄에 콩 보기보다도 과연 얻어 보기가 어려운 처지다.
우리들의 창작희곡은 확실이 <잊어버린 존재>다.
이리해서 젊은 희곡작가群은 저널리즘과 絶交하고 街頭에서 방황한지 오래다.
그러므로 나의 대응책으로 다음의 몇가지의 문제를 提唱한다.
 
A. 희곡문학 또는 연극문화만을 주로 하는 同人誌를 만들 것.
B. 연극인의 양심적 결합을 목적으로 한 조직을 결성할 것.
C. 극작가는 문단과의 교섭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劇壇(극장)과의 교섭에 착수할 것.
 
우선 생각나는 대로 적으면 이렇다.
시나 산문같은 것의 동인지가 출현하는 지금에 하필 희곡이라고 동인지 하나쯤을 結構치 못하지는 결코 않을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우리들의 극작가들이 능동적으로 결합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가장 시급한 해결을 기다리는 명제다.
旣成, 신인을 막론하고 누구나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문단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의 크나큰 誤算이었다. 문단 정책이 근본적으로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한, 극작가들은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한다. 극작가들은 문단으로 ! 가 아니라, 劇壇으로 ! 가고 와야 한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진정한 출발이 약속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는 인식한다 !
해마다 각신문에서 모집하는 신춘문예에서 우리는 몇몇의 낯설은 신인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후의 그들 신인극작가들의 소식이 중단되고 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오로지 문단을 유일의 活路로 알고 믿은 증좌일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거듭해서는 안된다.
가장 값있는 희곡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가장 성실하게 무대적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문단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니고, 극단에서만 體得할 수 있는 지식인 것이다.
무대적 약속은 어디까지나 냉정하다. 아무리 문학성이 풍부하고 순수한 희곡이라 할지라도 연극성이 결여된 희곡은 필연적으로 도태되고 만다.
여기에 말한 연극성이란 단어를 劇場性이라고 정정해도 좋다.
소설은 읽으면 그만이다. 희곡은 읽으면 그만이 아니다.
소설을 써서 벌써 기성이란 레텔이 붙은 분들이, 가끔 誤入 같이 써내는 소위 창작희곡이란 것이 간혹 실패하고 마는 것은 연극성이란 개념에 대하여 的確치 못한 탓이었다.
同人誌를 갖자 ! 劇壇으로 모이자 !
이같은 절규는 다만 오늘의 극작가만이 부르짖을 수 있는 정열이다.
정열은 항상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위에서 극작가들의 조직화를 제의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절대는 아니라는 것을 부언한다. 왜냐하면 조직의 필요가 침체된 희곡 문단을 타개하는 직접적 방도가 되리라고는 단언할 수 없는 이유를 가졌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이 망각한 고독한 존재로서 극작가들의 양심적 결합이 혹시나 격려가 될 수 없을까 또는 정력이 될 수 없을까 하는, 말하자면 문단적으로 상실된 그 어느 "힘"을 스스로 모아도 좋다. 둘이 모여도 좋다. 셋이 모여도 좋다. 모여서 힘을 기르면 그만이다.
조직의 명칭이 없어도 좋다. 조직이 견고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내부적인 너무나 내부적인 방편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지금껏 내부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희곡문단의 타개책을 생각해 보았다. 이것은 이야기의 순서를 가리려 한 까닭이었다.
나는 이제로부터 외부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문단이나 기성 문인들에게 요구를 말할 차례가 되었다.
진정한 희곡문학을 수립하기 위해선 우리의 문단은 또는 선배들은 우리의 요구를 甘受하리라고 자신하며 감히 붓대를 옮기려 한다.
 
나의 문단 타개책 (下)
3) 기성문인과 문단에 告함
기성작가와 신인 사이의 거리, 이것은 결코 항구적으로 평행선을 그리고 나갈 거리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알 수 없는 거리가 가로질러 있음은 무슨 까닭일까.
이 거리로 말미암아서 기성은 기성대로 신인은 신인대로 각각 떨어져서 沒交涉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는 이것을 그들 기성작가 여러분의 냉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새로운 제네레이션을 위하고 아끼고 그리고 진정으로 우리의 문단을 생ㄱ가하는 마음이 앞을 선다면 그들 기성작가는 누구보다도 솔선하여서 신인을 영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들 신인으로 하여금 가장 바른 길을 가게 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階級은 아무래도 우리보다 앞서 가는 기성작가 여러분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또한 섭섭하게도 연극 전문 批評家를 가지지 못했다.
희곡의 성장을 또는 융성을, 가장 성의로 촉진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전문적으로 연극 문화를 생각하고 아끼는 사람 밖에는 없을 것이다.
희곡문학이 이같은 窒息된 호흡으로부터 소생하기 위해서는 나는 늘 연극 비평가를 기대하게 된다. 기성과 신인 사이의 명예스럽지 못한 거리를 단축시키기 위해서 기성작가들의 문화사적인 자각이 필요하다면 또한 現今 우리의 저널리즘으로부터 <잊어버리 존재>가 되어있는 희곡문학이 埋沒된 地下로부터 발굴되고 價値를 가장 적확하게 認識 받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연극 비평가의 출현이 한시가 바쁘게 기다려지는 것이다.
희곡이 詩나 소설의 十편에 희곡 1편이라도 좋다.
소설 百편에 희곡 1편이라는 정도라도 좋다. 아니 이러한 산술적인 집념을 떠나서라도 우리는 우리들의 일할 마당을 요구한다.
朝鮮의 新文學은 다른 나라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을만치, 오로지 新聞으로부터 싹 텄고 자랐고 또 자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들이 신문의 스페이스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意義를 갖게 되는 것이다.
日刊신문을 떠나서 月刊으로 나오는 잡지는 어떤가. 編輯의 성질상으로만 보더라도 가장 많이 우리와 타협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잡지도 역시 우리에게는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다. 여기껏 발행된 잡지를 모두 한 곳에 모아놓고 그곳에 나타난 소설과 희곡의 수효를 계산하여 보아도 우리는 명료하게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단 한번이라도 2편 이상의 희곡을 일시에 게재한 경험이 있었던가. 아니 1幕이라도 과연 여지껏 실린 작품이 몇이나 될까.
다만 신인의 작품이 더구나 희곡이 오직 활자화 할 수 있는 기관이 그야말로 총동원으로 이 같이 불친절하고 무성의 하다면 희곡은 문단적으로 융성하기는 문제도 안 될 것이다.
紙面을 공개하라 ! 희곡을 대우하라 !
이것은 비단 필자 하나만의 절규는 아닐 것이다.
우선 일터를 얻어 놓아야 일을 할 수가 있다. 우선 지면을 얻어 놓아야 작품이 생산되고 작가가 踊出할 수 있는 것이다. 희곡문학을 주로 생각한 문단 타개책은 먼저 지면 획득운동으로부터 출발해야만 빠르지 않을까.
다음으로 남은 문제는 극작가의 발탁을 위한 희곡 콩쿠르 같은 행사다.
연극 콩쿠르도 좋다. 있어야 할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의 하나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성질의 것을 紙上에서 시험함으로써 희곡작가들에게 不斷한 자극을 주고 强力的인 激勵를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制度로서 우라는 희곡賞이라는 特典을 '劇硏座'로부터 받고 있음은 응당 기뻐해야 될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있었음으로써 신인 金鎭壽씨가 <길>을 가지고 등장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확실히 우리 희곡界에 있어서 플러스가 아니면 안된다.
東亞日報에서 신인 문단 콩쿠르가 이런 때에 거행 되는 것은 희곡을 그 중에 포용하였다는 단순한 해석만으로서도 고마운 일이 아니면 안될 것이다.      ---끝---
 
 
 
 
 
 
*김영수 평론 <朝鮮 신극운동의 현단계와 그 전망>
*김영수 평론 <창작 月評 릴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