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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평론 <문단 불신임안(文壇 不信任案)>
관리자 2007-11-30
월간지 朝光  1939년 4월호 p309
 
文壇 不信任案
金永壽
 
문단에 대한 불평을 말하라면 한둘이 아니다.
직접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혹은 단순히 충실한 독자로서의 문단에 대한 불평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 중 나는 전자의 입장으로서 두어 가지만 말하고저 한다.
우선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우리들 작가를 주시한답시고 버티고들 있는 소위 평론가들이다. 그 중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자기도취에 떨고 있다.
가령 東京 문단에서 휴머니즘이 어떻다 하면, 그리 쏠리고,
또 知性이 어떻다 하면 그것도 덥적거려 보고 한다.
일정한 主調를 따라서 동시에 자기의 思念을 표명하려는 사람이 없었고, 지성을 옹호하자는 절규를 해보지 않은 평객이 드물었다.
그러나 결과에 있어서는 그들의 그러한 운동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역시 그들의 흥분을 이해치 못한 채 1년을 넘겨 버렸다. 그것은 피차의 섭섭한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문학이 여하한 발전 과정을 밟고 왔으며, 또는 어떠한 방향으로 진전하고 있는지, 평론을 일삼는 사람은 이것부터 체득하여야 한다.
이러한 욕구는 三木 淸이나 발레리 등속에서는 만족할 수 없다.
오로지 우리의 문학은 우리의 고전으로부터 풀어 나가야 한다.
발레리는 20세기를 사실의 세기라 했다, 이러한 말을 신주같이 내세워 가며 자못 행세를 해보려고 한댓자, 결국 그는 우리의 문단과는 먼 거리의 지점에서 헛 소리를 치고 말게 될것이다.
작가에게 신인, 중견, 기성이라는 벼슬을 부여하듯, 평론가에게도 그와 유사한 꼬리표를 달면 구별하기에 편의할 것 같다.
저마다 탐탁치도 않은 인상비평을 해가며, 그래도 그것만이 자못 작가들을 지도하는 훈시나 같이 아는 데는 그만 아찔하다.
月評 따위나 끄적거리고, 일방으로 남의 評文을 밀수입해다가 떠들어 대는 사이비 評家가 횡행하는 한에는, 우리의 평단은 좀처럼 구제되기 어려울 것이며 나아가서는 문단 전반적으로 世紀的 發展을 도모할 수는 없을 것이다.
<無明> 같은 佳作을 우리가 발견할 때 그와 아울러 우리는 <무명>을 읽은 비평가의 글을 기다린다. 이것은 글을 쓰는 사람만이 기대하는 야릇한 심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월평은 우리의 기대를 무시하고 "너무 좋아서 평을 할 수가 없다" 하며 학구적 정신을 포기하고 自我의 무기력을 은익함에는 섭섭하다 못해 불유쾌해진다.
<하여튼 新人은 旣成을 배워라> 하고 훈시함에는 더 한층 어이없어진다.
물론 우리들은 기성을 배우고 본 받아야할 것이 많다. 그러나 덮어놓고 <무엇이든지 式>으로 나아가서는 위험하다. 그러라고 일러주는 사람은 우리들보다 더 위험한 사람일 게다.
傾向文學이 행세하던 시기에는 그래도 評筆을 드는 사람들에게 정열은 있었다.
요즈음의 비평가들은 이러한 정열조차 차압을 당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침착하냐 하면 그 역시 들어맞지 않는 소리다.
통틀어 말하면 우리가 신뢰해야 할 지위를 보수하고 있는 그들은 너무도 무지하고 무책임하다. 이것은 일견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으면서도 질적으로는 문학의 발전을 장해하는 거대한 相剋이라 아니할 수 없다.
거짓말을 하도 많이 한 사람이 간혹 정말을 한댓자 고지들리지 않는 격으로 오늘의 평단이 간혹 참다운 제창을 한대도 우리는 곧 수긍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오로지 그들 평단을 떠메고 있는 사람들의 허물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러나마 좀 작가에 대해서, 아니 작품에 대해서 얼마간이라도 친절하였으면 좋겠다.
18회에 가서야 끝을 막는 <소복>을 단 11회를 읽고서 나머지는 그저 그러려니 하는 추단을 해놓고 평을 하는 선배의 태도에 나는 다시 한번 어수룩한 평단의 내막을 저주하였다. 이것은 하나의 예다.
<무명>때문에 春園선생은 甲이란 평가에게는 최대의 경례를 받았고, 乙이란 평가에게는 僞善者란 무서운 선고를 받았다. 그래도 이러한 갑을의 양 비평가를 평단은 그냥 묵과하여 버린다. 잘못이 수정되지 못하고, 잘못과 옳음이 혼동되어서 복대기질을 치는 금일의 評壇을 나는 不信任한다.
그러니까 小說을 쓰게 된 나를, 나는 행복하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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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평론 <新人 不可恐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