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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추석양의 기억들
관리자 2007-03-12
<배우 추석양의 증언>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

1946년 元八 형과 같이 아버지에게 인사했음.
또 아버님의 희곡집 출판을 우리 부친이 했음.
작품은 <오남매> <여사장> <혈맥> <사육신>등.
나는 이때부터 아버님과 같이 생활을 했음.
이때부터 나는 극단 ‘신청년’에 입단하여 여러 작품에 출연했음.
당시 극단 신청년은 아버님과 연출 박진 선생 두 분이 주로 움직였음.
 
* 그 당시 아버님의 활동
대단 하였음. 해방후 우리나라에서 처음 연극 경연대회가 있었음.
참가단체는 6개단체. 그 중 신청년이 아버님의 작품 <혈맥>으로
작품상, 연출상, 남녀 배우상, 모조리 수상했음.
남배우는 박재행, 여배우는 김복자.
이 때 쓰시는 작품은 라디로 드라마, 극단 신청년 연극 작품, 신문사 연재소설,
영화 시나리오, TV 연속극 작품등등 활동이 대단하셨다.
영화 작품은 <박서방><굴비><혈맥><여사장>등등 여러 작품 있음.
영화는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하셨다.
지금 충무로 지하철 광장에 수상 장면 사진이 걸려있다.
당시 동양TV 작품으로는 <김옥균><문><굴비>등 여러 작품을 쓰셨음.
이렇게 많이 활동을 하셨기에 생활 자체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았다.
 
* 당시 아버님과 친하던 사람들
물론 아버님 나름대로 아시는 분이 다방면으로 많으셨다.
내가 알기로는 소설가 정비석씨가 아현동 집에 여러 번 오시는 걸 보았다.
또 배우들도 많이 있었지만 특히 김승호 박상익씩, 김복자 황정순 여러분이 계시다.
얼마후 김승호 박상익 두 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나에게 들으시고
아버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담배만 연거푸 피우시면서 허공을 바라보고 계셨다.
특히 이 두 분에게는 서로 “이 놈 저 놈” 하시던 처지였다.
 
* 글을 쓰실 때 아버님의 습관 버릇
작품을 쓰실 때는 늘 마음의 준비가 시간이 걸린다.
담배를 연거푸 피우시고 우선 방안이 깨끗해야 한다.
나는 방을 깨끗이 치워야 한다.
글을 쓰실 때 아버님께서는 나에게 이것 저것 물으신다.
내가 그건 이렇지 않습니까 말씀 드리면
‘그래 그렇구나 좋다’ 하시면서 글을 쓰신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나는 아버님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모든 것을 아버님 기분 좋게 해드려야 한다.
이럴 때면 담배 재털이를 깨끗이 해드리고 때로는 담배 불도 붙여 드리기도 한다.
이런 일 저런 일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 아버님은 기분이 좋아 하시는 걸 여러 번 보았다. 이때가 바로 연극대본 <혈맥>을 쓰실 때다.
어떤 날은 밤을 주무시지 않고 글을 쓰신다.
생각이 떠오르지 않자 갑자기 “너의 예명을 추석양 이라고 해라” 하셨다.
그때부터 나의 예명은 추석양으로 오늘 날까지 연극 영화 TV에 쓰여지고 있다.
작품을 쓰실 때 그 고충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생활을 같이 했기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잠을 제대로 주무신 적이 별로 없었다.
혹 잠을 참으시려고 애를 쓰시나 신경이 날카로워지신다.
그 신경질 같은 것을 나에게 쏟으신다.
별안간 오밤중 고요한 순간, 나더러 마당에 나가 연극 대사를 해보라고 하신다.
나는 아버님의 모든 것을 받아 들여 마당에 나가 큰 소리로 대사를 한다.
안방에서 주무시던 할머니 어머니 나미 유미 은미 다미 학중 “무슨 일이냐”고 우르르
마루로 나오곤 하던 생각이 난다.
이렇게 고생을 하시면서 쓰셨기에 작품상을 수상하셨다.
 
* 오빠(주: 추석양)가 본 아버지의 장점
아버님께서는 나하고 같이 언제나 고개를 넘어 서대문까지 걸으신다.
몸도 불편하신데 걸으시면서 ‘내가 입은 양복이 어떻게 보이느냐’고 하신다.
참 멋있는 분이시다. 난 아버님이 넥타이를 매고 다니시는 것을 본적이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아버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내 생각은 아버님이 특이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님 생각으로서는 다리가 성하지 않아 걷는 게 이상하게 보여서 쳐다보나 생각하실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버님은 이런 버릇이 있으시다. 나더러 먼저 걸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내가 가는 것을 보라’고 하신다. 좀 멋있게 보이느냐고 하신다. 네 정말 멋이 있읍니다고 말씀 드리면 슬그머니 웃으신다. 어쨌든 작가로서는 품위가 있는 멋있는 분이셨다.
 
* 밖에서 아버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박력있게 작품을 쓰시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의 성격부터 뿌리가 박혀있는 작품이기에 좋은 평가를 받으신 분이다.
항상 겉으로만 흘려내리는 작품과 설명적인 작품은 늘 질색하신다.
연극인 영화인 감독 여러분들이 작가로서는 대단한 분이라고 지금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소복> 작품은 참 좋은 작품이었다.
 
* 아버지가 좋아하던 여자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이 여럿이 있었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6.25전 어느 여가수가 있었는데 아주 미인형이다.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많은 여배우들과 친하셨지만 유독 내가 알기로는 ‘신청년’에 있던
김복자씨 하고는 더욱 친밀하게 지내셨다.
지금 생각이 나지만 김복자씨 집에 아버님 심부름 갔던 생각이 난다.
내 생각으로는 당시 불편하시지 않았으면 많은 여배우들과 인연이 있었을 거야.
아버지의 편지 - 演出係 李 惠 璟 님
안영기-김유미 부부 시카고 4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