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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편지 -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
관리자 2007-03-11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
(이 편지를 끝으로 열흘후인 23일 별세함)
 
유미에게                                77-4-13
어제(4.13) 길주(吉珠)를 시켜서 이청준씨에게 직접 알아 보았는데, 요즈음은
현상 장편소설 모집하는 신문이 없단다. 내년이면 몰라도.
하여튼 작품의 내용과 길이와 문장력을 보아서 혹시 신문사에서 구미에 당기면 연재도 가능하고, 신동아나 여성동아 같은데도 연재 될 수 있지 않으냐고 하더란다.
윤영기씨 편에 ‘별들의 고향’ 상 하 두권을 부친다. 내용보다도 문장력과 Chapter 쪼개는 것과 이야기의 진전시키는 수법은 공부가 되리라 믿는다.
민중서관에서 나온 한국문학전집은 요즈음 탈세사건이 나서 책을 못 팔고 있기에 못 샀다.
그러나 쉬 해결이 될 테니까 팔게 되면 사서 부치마.

 * 장편소설이라고 인물을 너무 많이 등장시키지 마라. 절대 필요한 인물 외에는 등장 시키지 마라.
 * 지금은 다만 노트를 한 권 사서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노트를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하다 못해 꼭 필요한 대화까지도.
 * 원고지는 내 말대로 Printing 해라.

윤영기씨가 4월11일에 도착해서 곧 전화 걸었더라. 그래서 4월14일 낮 4시에 시청 앞에서 만나, 같이 집으로 들어오기로 해서 吉珠(주: 며느리)가 나갔었는데 경기동창들이 몰려와서 그 쪽에 뺏기고 길주 혼자 돌아왔다.
면도칼 3개와 루쥬 잘 받았다. 네 말대로 나미(주: 맏딸)와 길주가 하나씩 쓰기로 하고, 면도칼은 학중(주: 외아들)이 하나 주었다. 인제 5년 이상은 쓸 것 같다.
다시 소설 이야기인데, 아직은 너 머릿속에서 명멸하는 것은 단편적일 거다.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켜서 작품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자연히 아이들의 집도 방문하게 될 것이고, 여기서부터 소설이 클라이막스에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여튼, 금년 여름은 작품을 구상하고, 인물을 설정하고, 네가 보는 시야를 확대하도록 하자.
또 쓰마.
 
* 날짜 미상의 편지
 
클라이막스에 탁 끊어서 역(逆)으로…

여기서 하는 의족이 5만원이라니까, 엄마가 잘못 알지 않았느냐고 했더라.
이유가 있다. 미국서 한 다리는 세루로이드 제품이고, 한국에서는 세루로이드가 안되어 나무로 깎아 칠을 하니까, 하나에 5만원 한다더라. 나미가 의족 제작소 사람을 데리고 와서, 온 수고비로 6천원을 주었다. 아직은 그 밖에 돈이 의족으로 해서 나간 것이 없다.
4월 6일에 데리고 와서 Size를 재 갔다. 20여일은 걸린다고 하더라.
몇 달을 들어 앉았었는데 그 까짓 한달쯤 문제겠니. 하나 궁금한 것은 미국서 한 것처럼 속에 고무를 넣어서 처음으로 해 보겠다니까 어찌 될지 모르겠다.
어서 의족이 되어 걸어 다녔으면 좋겠다.
                  답답하고, 어떤 땐 미칠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여지껏 참아 왔으니까 더 참을 수 있다. 
                  엄마는 부디 가능하면 재이민수속을 해서 
                  거기서 사시게 하라. 부디, 부디.
 
또 소설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차례대로 쓸 생각 말고
클라이막스에 탁 끊어서 이야기를 역(逆)으로 풀어 나가거라.
가령, 일곱 아이들이 학교가 파해서 집엘 안 가니까 경찰이 왔다는 이야기---
이것은 신문 소설 한回分이다. 一例에 불과하지만---
우선 노트를 해라. 매일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등등을.
또 자주 편지하마.
 
 
사위와 손녀들이 보고 싶구나

Yumee에게                   77-2-10
저번 엄마의 편지에 22일이나 24일 경에 시카고에 가신다고 했는데 지금 너희 집에 안 계신지?
언젠가도 말했지만 이곳 외무부에서 동시에 부부를 일시 방문을 안 시킨다.
그리고, 의사의 말이 지금은 건강상 불가능이란다. 편지로나 이야기하자.
월간 잡지는 3개월째 안 사 부치고 있다. 도리어 방해가 될까 보아서 그리 알기 바란다.
사진은 잘 받아 보았다.
인제는 글씨도 맘대로 안되고, 편지 한장을 쓰려면 머리가 아파서 못 쓴다.
퇴원이후 별 병은 없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서 잘 걷지를 못한다.
安郞(주: 김유미 남편 안영기)과 아이들이 보고 싶다. 안랑의 건강한 모습,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 모두가 그리운 사람이 전부 그곳에 있는 것 같다.
학교 선생님 생활도 여러가지로 힘들 텐데 잘 꾸려 나가기 바란다.
이곳의 자세한 이야기는 엄마 편에 듣기 바란다. 아이들에게 따로 편지 못 쓴다. 네가 말로 해주어라. 할아버지는 너희들을 더 보고 싶어 한다고.
나는 그저 매일 똑 같은 생활이다. 
이런 생활이 매일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만 알아다오. 父
 

다리가 아파 방에 갇혀 있을 때마다

시베리아에 유배된 솔제니친을 생각한다

유미에게                                        77-3-11
엄마의 편지에 네 인터뷰 기사가 신문에 난 것 보았다.
선생님으로 활동하는 모습,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엄마의 편지에 너희집 살림은 안정이 되었다고 하니 듣기에 반갑다.
다미네보다 시카고에 있는 너희들을 내왕하며 도와주었으면 하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다미네도 사정이 엄마가 있어야 되는 듯 하니 가끔 전화로 연락이나 하고 소식 전해 주기 바란다.
크리스틴과 엘리자벳(주: 김유미의 두 딸)이 전보다 사뭇 의젓해졌다 하니 더욱 보고싶다.
피아노를 샀다 하니 잘 했다. 어려서 부터 정서교육에 힘써야 한다.
네가 아침 7시에 나가고. 安랑이 8:30 경에 나가고,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 가면 집안이 텅 빈다는데…..어쩔 수 없구나. 너는 인제 문교부 시험에도 파스해서 당당히 학교 교사로서 다니니까, 거기에 네 편지 말 대로 보람을 느끼기 바란다.
나는------아직도 밥은 먹지만 다리의 힘이 없어서 잘 걷지를 못한다. 다행히 이문호 박사에게 루틴 첵(주: 정기검진)을 받은 결과 내부에는 아무 병도 없다 하니, 얼마쯤 위안이 될 뿐이다. 세상에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이 뭐 나 뿐이겠니? 마음대로 가고 싶은 데를 못 가니 답답은 하지만, 역시 숙명적으로 알고 있다. 살이 말라서 다리가 잘 맞지 않아 양말을  둘 씩 껴 신고 다닌다. 별로 다니지도 않지만……이런 때마다 나는 시베리아에서 감방 생활하던 때의 솔제니친을 생각한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책을 잘 못 읽는다. 너한테도 1월치부터(사실은 읽을 것도 없어서) 잡지를 안 부치기로 한 거다.
다만 민중서관에서 나온 한국문학전집이 김광주(金光洲: 소설가)씨와 합본으로 나온 내 창작집은 사서 한 권 보내주마. 작가에게 5권씩 기증본이 왔는데 여기저기 나눠주니 없어졌다. 그 책은 꼭 부쳐주마. 거기에는 경향신문에 났던 <파도(波濤)>(주: 김영수 연재소설)가 실려있다. 책 값이 2,500인데 작가에게는 2,000에 준다고 한다. 安랑, 여전히 건강히 일하고 있다니 무엇보다도 고맙다. 아이들도 너도 건강에 조심하기 바란다.

서두르지 말고 작품 플럿부터 짜야

유미에게                              ’77-3-30
지난 23일에 부친 편지 지금 받아 보았다. 그런 내용은 보통 사람이 체험 못 하는 것이니까 좋은 작품이 될 줄 안다.
그러나 신문 소설로서는 쓰지 말아. 우선 女性 東亞에서 모집하는 실화 소설에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대뜸 신문 소설로 데뷰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여성 동아 6월호가 5월5일 나온다니까 곧 부쳐 주마.
그 동안 우선 이야기의 플럿을 짜라.  전체를 연결하면서 하나하나의 소제목이 필요하다.
절대로 급히 서두르지 말고, 전체의 플럿부터 짜기 바란다.
부쳐 준 것 잘 받았다.
박완서(朴婉緖)란 여류 작가도 여성 동아에 당선되어서 나온 작가다.
시일이 있으니까 자료를 찾아서 보내주마.
우선 소재가 색다르니까 잘만 쓰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소재 정리와 플럿을 꾸미도록. 일간 또 곧 쓰마.
 
인물 묘사를 잘하고 사물을 객관視하도록

유미에게                                       77, 3, 30
작품을 구성할 때 신문소설로 구성하지 말아. 신인 작품을 신문에서 실어 줄 리가 없고, 실화 소설을 신문에서 실어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른 여류 작가가 여성 동아를 통해서 나오 듯, 너도 자신 있는 소재라면 여성동아를 목표로 차근차근 써나가기 바란다.
먼저 주의 할 것은 인물 묘사를 잘 하고, 사물을 객관시 해야 한다.
그러니까 네가 체험한 것이니까 이야기의 순서(구성)을 잘 해서 써나가면 되리라 믿는다.
어디서 이야기를 시작해서 어디서 끝을 맺는가도 미리 생각해야 한다.
자서전이나 전기 소설이니까.
여유 있게 시일을 잡고 한 Chapter씩 써나가도록 해라.
5월5일에 6월 호가 나온다니까 그때 전부의 분량이 몇매인가 봐서 나누기를 바란다.
학교의 환경 묘사, 자연 묘사, 영어를 모르는 갖 이민 온 엄마들의 심정, 이런 것도 중요한 거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실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X-mas의 Santa 복장을 이상한 물감을 사용해서 칠한다든지……우선 간단한 story를 보내다오. 이런 소재는 후딱 갈겨 버릴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여유를 가지고 쓰기 바란다.
몇 Chapter로 쪼갤지, 그것은 다음에 모집 예고가 나오면 또 써보내마.
 

내 이름 새겨진 원고지 쓰지마라

이롭기는커녕 불리한 점이 많다

유미에게                            77/ 4/6
보낸 것 잘 받았다.
그런데 한가지 부탁이 있다. 원고지는 초고는 모르지만 청서 할 때는 내 이름 인쇄된 것을 쓰지 말아. 이로운 점이 없고 불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냥 이런 바둑판 식으로 1행 20자씩 원고지 한 장을 등사 원지에 써서 도서관에 가서 기계에 넣고 돌려라. 특별히 부탁한다.
저 번에 편지를 부치고 또 생각했는데, 네가 학교에 있고 학교에서 얻은 체험이니까
생활수기 밖엔 안되리라 믿는다. 小說이 될지………하여튼 그것은 네가 알아서 하고.
원고지만은 부디 내 말대로 하기 바란다.
원지에 줄을 쳐 가자고 가서 기계에 넣고 돌려라. 내 원고지 같이 그릴 것 없고, 그냥 이렇게 한 줄에 20자씩 10행만 그려라.  ***주: 원고지 그림 그려넣음

경향신문에 연재한 내 장편 ‘파도’를 보내주마

내 작가생활이 가장 왕성하던 30년전에 쓴 건데…
 
유미에게                                                      77-4-11
그저께 저녁에 뜻밖에도 윤영기씨로부터의 전화가 걸려왔다.
일간 전화 걸고 한 번 찾아오겠다는 말.
이 편에 ‘별들의 고향(上,下)와 내 장편 <파도>가 해방 직후 경향신문에 실려서 신문소설로서는 인기가 있었던 것이다.
근 30년 전에 쓴 것이니까 너희들은 모를 거다. 이 때가 나로서는 작가 생활에 있어서 가장 왕성하던 시기다. 은미가, 그리고 다미가 걸리나 다음 달로 미룬다. 우선 은미에게 보여주기나 해라.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또 노랑 종이에 네가 작품 쓰는데 참고 될 말을 쓰마.
신문에 장편을 싣자면 오직 현상 당선의 길 밖에 없으니까 그 길을 찾기로 한다.
없으면 기다리고. 그 동안에 너는 수정하고 고칠 데 고치면 되지 않겠니.
의족은 나미가 의족사 데려와서 맞췄다. 사실 걸을 수가 없어서. 값은 5~6만원이나 든다고.
여기 대해서 또 쓰마.

오늘은 왠지 산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게 하는 날
 
Umee 에게                   Oct. 25, 73

오늘은 왠지
산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게 하는 날이었다.
왠지…왤까?

나는 Pullaske란 곳의 Busstop 근처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CTA Driver들이 혹시 내가 타기를 기다릴까 보아 더 깊이 들어간 벤치에 돌아 앉아서.
Clinic에서 Dr 가 다음해 2월 25일 하루만 더 오면 Ending이라는 기쁜 진단결과도 있었고...
安랑과 Pulaske에서 만나기로 한 것은 5:30 PM.
나는 미리 한 시간 전에 와서 Japanese Book Store에서 구한 문고본(文庫本)과, Korea Book Store의 Manager가 그냥 드린다고 하며 내 작품이 연재될 여성동아誌와 소년중앙의 1회분 원고의 길이를 계산도 하고-------. 그러다가 5분전에 마침 Bus를 기다리는 청년에게 시간이 맞느냐고 물어 가지고 약속한 길을 건너가 St. Luca Cemetry가 있는 West쪽으로 가려는데 어느 틈에 벌써 왔는지 安랑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5분 전에 미리 온 것이었다. 내가 미리 건너 가는 건데---하고 후회했다.
시간은 제일 복잡한 때------.
                    X
Yumee야
'맹꽁이'(주: 구상중인 작품 여주인공)에 自信을 가져라.
한 1년 예산하고 女性東亞가 해마다 모집하는 장편을 쓰도록 해라.
네 마음대로 구상하고, 그리고 틈틈히 상(想)이 떠오르면 Memo하고.
                    X
목적이 사는 인생—이러한 너를 가진 나는 왠지, 내가 뜻 있게 인생을 살고 있는 듯
착각과 보람마저 느끼게 한 오늘이었다.
                    X
산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기도 오끼나와에서 돌아와 15년만에 처음 느낀 오늘이었다.
                    X
왠지………
정말 왠지, 오늘은 내가 가슴을 활짝 펴고 낙엽을 밟으며 벤치 주위를 마냥 걷고 싶었다.
Good Night
From Dad
 
*註: 이 편지는 김영수가 시카고에 사는 딸 김유미 집에 머물 때,
밤늦게 부엌에서 습작을 하는 딸의 모습을 발견하고 느낀 기쁨의 메모다.
 
아버지의 편지 - 소설은 이렇게 써라
아버지의 편지 - 演出係 李 惠 璟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