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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첫 창작집을 내며: 김영수의 <後記>
관리자 2007-10-20
創作集 <素服> 金永壽 著 正音社版 p202
1949년 2월25일 발행    정가 400圓/送料30圓
(註: 이 창작집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소복>과
      단편 <生理> <닭>이 실려있고, 그 뒤에 後記를 붙임)
 
後 記
 
1
小說을 쓴다는 것은 확실히 나에게는 벅찬 修業인 것 같습니다. 해가 가고 나이는 먹을쑤록, 이런 불안한 생각에 마음이 번거로워짐을 告白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허나 이 길로 들어선지도 어느 덧 열하고도 다섯해가 넘습니다. 그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 얼굴이 뜨뜻하여짐을 또한 숨길 수 없읍니다.
2
<素服>은 열 두 해 전 학교를 나오던 해 봄에, 朝鮮日報 新春文藝에 當選된 것이고, <生理> 역시 그 해 朝光에 실렸던 것이며, <닭>도 같은 해에 新世紀에 실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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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몇몇 작품이 있고, 해방 후에도 몇 篇 쓴 것이 있기는 하나, 구태여 <소복> 당시의 작품을 추려 모은 것은 나로서는 이것이 文學 修業의 하나의 里程標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나는 짐짓 그 때의 작품중에서도 같은 系列의 것을 모아 이 책에 실어 보았읍니다.
4
<素服>에서, 혹은 <生理>에서 그 어떠한 비약을 제시하지 못하고, 아니 비약은 커녕, 거기서나마 좀 더 깊이 들어가 숨은 인간을 발굴해 내지 못하고, 그냥 시대의 潮流에 밀려 내려오다가 이제 뒤늦게 이 조그만 책을 上梓하게 되니, 책을 갖게 되는 기쁨보다도, 거듭 내 자신의 걸어 온 길이 돌이켜 보아져서 부끄럽고 괴롭습니다.
5
허나, 아직도 나는, "좋은 작품을 써야지" 하는 기원만은 잃지 않고 있읍니다.
6
祈願---아마도 나는 사는 날까지 이 그지 없는 기원 속에서 살고, 이 기원속에서 그냥 쓸어질 것 같습니다.
7
이 불 같이 타오르는 기원은 또한 나에게는 끊임없는 情熱일지도 모릅니다.
이것 때문에 나는 아직도 문학을 단념 못하고, 붓을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읍니다.
8
戰爭이 일어 終幕을 告할 때까지 꼭 다섯 해 동안, 나는 붓을 들지 않았읍니다.
않았다는 것보다 못 들었다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이 다섯 해 동안 나는 文壇 末席에 이름은 두고서도 붓을 들지 않았고, 잡지나 신문에 글 쓰기를 斷念하였읍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글을 쓰지 못하는 내 스스로의 多幸한 非才의 탓도 있었지만, 나 자신이 붓을 꺾고 때를 기다리기로 한 탓도 없지 않았읍니다.
9
해방이 되어, 다시 書齋로 돌아가 紙筆을 앞에 놓고 앉았을 때, 나는 오랜 동안을 두고 흥분도 하고 긴장도 해 보았읍니다. 그러나 별안간 다닥드린 역사의 커다란 轉換期 앞에서 나는 보고 듣고 느낀 것, 다시 말하면, 내 마음의 준비가 너무나 없었고, 있다 해도 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읍니다.
滔滔하게 밀려드는 파도 앞에 나는 외로이 서서 얼마든지 고독을 느끼었고, 눈 앞에 연달아 전개되는 놀랍고 황홀한 현실에 나는 얼마든지 내 한 몸의 작고 약함을 슬퍼하여 마지 않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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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것이 내 한 몸의 위안은 되었을지 모르나, 새 날의 준비가 적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랑일 수는 없었읍니다. 작가로서의 커다란 悲哀가 아닐 수 없었읍니다. 앞으로 5년이고 10년이고, 더 공부를 하고 더 힘을 길러서 붓을 들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서재에 틀어박혀 古典의 먼지를 털던 것도 이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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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해서 해방후 4년동안 서울신문에 <별>을 썼고, 東亞에 <길>을 실렸을뿐, 오랜동안 정말이지 나로서는 꽤 오랫동안 창작의 붓을 쉬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感興도 흥분도 없는 글을 쓰느니보다, 차라리 쉬고 있는 것이 眞摯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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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과연 착실하게도 소설을 쓰지 않았읍니다.
쓰는 대신, 나는 보고 듣고 생각하기에 얼마든지 시간을 바치었고 힘을 기울여 보았읍니다.
13
쓰는 대신, 보고 듣고 생각하자, 이것이 얼맛동안 나의 생활의 指標였읍니다.
아직도 얼마를 더 이러한 테두리 안에서 나는 신음하고 轉輾할지 모릅니다. 나는 묵묵히 내 수업의 길을 걸어야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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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한다는 건, 결국 자기가 보고 듣고 한 것 외에는 엉뚱한 것을 꾸미고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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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동안, 해방 이후 남들이 쓰고 발표하고 하는 동안, 내가 보고 듣고 한 것이 적지않고, 또 이것은 다른 사람으로서는 기웃거려 보기도 어려운 것이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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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제 우선 이것을 정리하여야겠읍니다. 그 동안에 들은 것을 추리고, 본 것을 가리어 한 권 글을 써 보아야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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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을 대하고 앉아 거창한 일을 앞에 놓고 다시금 나는 내 문단 이력서를 써 내놓는 셈으로 이 보잘 것 없는 <素服> 한 권을 꾸미어 보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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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 이것이 책이 되어 세상에 나가게 됨은 오로지 正音社 崔暎海兄의 두터운 情이었음을 여기에 적어 고마운 뜻을 표하고저 합니다.
 
戊子 臘月                                                                        金 永 壽
 
<혈맥>공연을 축하하며 (김유미)
신춘문예 당선작가 축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