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자료실> 김유미 자료실
 
아버지의 편지 - 소설은 이렇게 써라
관리자 2007-03-11
소설은 이렇게 써라

유미에게                                         77-4-9
혹시 네가 작품을 쓰는 데 참고가 될까 보아 몇 가지 적는다.
이야기의 opening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문제다.
역시 ‘나’ 라는 인물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주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가령, 학교에서 혹은 문부성에서 교원으로 정식 채용하는 데서 시작한다든지,
앞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데도 그러는 것이 편할 것 같다.
그것도 자서전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드라마틱하게, 가령 학교로부터 통지서를 받고
기다리고 있는 심정, 여기서 자기 소개를 극적으로 했으면 한다.
가령, 학교 책임자와의 문답에서라든지…
다음은 등교 첫 날, 반을 배치 받고 그 반의 아이들의 절반이나 혹은 7,8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유색인종(有色人種)이라는 점, 이런 것이 첫 날 학교에 나갔을 때에 묘사되었으면 한다.
나도 좀더 생각해 보겠지만, 하여튼 소재로서는 좋은 소재다. 생활이 가난해서 또는 아이의 교육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양공주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태극기를 그리는데 노란 색으로 칠했다든지…
이러한 이야기가 몇 토막이 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이것을 토막내지 말고 연결성 있게 이야기를 끌어 나가야 한다. 만약에 토막토막 이야기가 기록된다면 단편의 연결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한국아이 몇을 추리어라. 그리고 그 아이들끼리만 노는 속으로 작자가 파고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작품의 주제(Theme)을 설정하거라.
주제가 없는 작품은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나마나 이 작품의 주제는 휴매니즘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아이들 때문에(이민 온 아이들 때문에) 학교서 문제되었으면 그것은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선생이 무마시켰으면. 그리고 문제아의 가정을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 이야기의 무대를 삼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환경과 그 집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릴 수 있으니까.
이것은 보통 있는 상식적 이야기가 아니고, 특수한 이야기여야 한다.
이런 소재를 고르면 많을 줄 안다.
이민 온 부모들---자기들은 못 배워서 고생하지만, 자식만은 훌륭하게 공부 시키고 싶다는 이야기. 미국인 노동자와 사는 양공주의 성애(性愛). 이런 것이 동정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묘사해 나가야 한다.
이야기의 성질로 보아서는 훌륭한 장편 소설이 될 수 있다.
대관절 어떤 이야기인지 대강이나마 구성을 알고 싶다. 그런 영어 못하는 아이들 중에서도 왠지 항상 외롭고 다른 미국 아이들 하고 어울려 놀지 않고 혼자 동떨어져 노는 아이(혹은 놀지 않는 아이) 이런 아이를 작자인 너 말고 부주인공(副主人公)으로 택하라. 그러면 이야기가 쉽게 풀려 나갈 수 있다. 그래서 네가 하도 이상해서 가정방문을 한다. 이러한 때 태극기 색칠 문제가 일어났으면 한다.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믿는다.
기한을 촉박하게 잡지 말고 차근차근 써 나가가기 바란다.
그리고, 그 전부터도 하려던 말인데 너는 작품을 쓰다가, 예를 들면 “…….” 이러한 것이 많다. 한 문장은 완전히 끝을 내거라. 네가 마음 속에 느낀 사상을 남에게 전하기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절대로 특별한 이유 외에 “……..” “…….” 이러한 표현은 피해라.
그것은 결국 네가 표현하려는 것이 점선으로 표시되는 것이고 그러면 너의 의사가 상대방에게 통할 줄 알지만 그렇지는 않다. 어디까지나 한 문장은 완전히 끝내야 한다. 원고지가 두 장이 걸리든 3장이 걸리든 네가 쓰고 싶은 말은 충분히 또는 완전히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철학(즉 주제)가 흘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야 하고.
대강 무슨 이야기일 줄 안다.
내가 과거에 작가로서의 실패를 한 것은 철학성 보다도 재미에 치중했던 때문이다.
재미도 있어야 하고, 주제도 있어야 하고, 그러면 되는 것이다.
다음이 문장력(文章力)이다. 문장력이란 글을 써나가는 매력이다.
그런데 그것 보다도 어느 신문사에서 장편소설을 현상 모집하는 지 모르겠다.
최근에 없으면 내년 초에는 있을 테니 끈기있게 쓰기 바란다.
역시 이 테마는 네가 애초에 말한 대로 장편 소설의 소재다.
마침 어제 윤영기(尹永基)씨가 왔다고 전화가 왔었다. 일간 전화 하고 한번 찾아오겠다고. 그러나 이 편지는 내일 부치고.
신문소설로서 히트하고 그것으로 유명한 젋은 작가가 된 최인호란 작가의
<별들의 고향>이란 책(상,하) 두 권과, 내가 해방 직후에 경향신문에 실려서 그때엔 소위 인기가 있었던 소설집을 보내주마. 민중서관에서 나온 한국문학전집의 개정판이다.
그럼 오늘 이만하고, 너에게서 스토리와 구상과 플럿(Plot)이 오면 또 쓰마.
그전에도 생각하는 대로 한 주일에 한번이고 두 번씩 부쳐주마.
절대로 단숨에 써갈길 생각말고 1년이면 1년, 2년이면 2년 걸릴 셈치고 쓰거라. 이러한 소재는 상상만으로 Real한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니까,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다.
또 쓰마.
 
P.S.
                면도 칼은 몇 해 쓸 것 같다.
                지금 보낸 것이 제일 쓰기 좋고 잘 드는 게다.
                내가 살아서 3,4년 후에 또 이런 부탁을 하게 될지……
이 지음은 내가 책상 앞에 앉으면 내가 소설을 쓰는 기분이 자꾸 난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 뿐이고…………..
학교가 파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아이들. 이 대목도 훌륭한 이야기꺼리다.
태극기 물감칠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될 수 있는 한 이러한 이야기들이 그 일곱 아이들 중에 많이 나왔으면 한다.
<별들의 고향>은  다는 못 읽었다 시야가 흐려오고 곧 피로가 와서.
 
*몇가지 부탁한다
영어를 가급적 안 쓰도록 해라.
학교장하고 말하는 것도 너는 이러한 뜻으로 말을 했다고 하여라.
절대 필요한 말 외에는 영어는 피해라.
*그리고 원고지는 사서 부쳐주랴?
공연히 피곤하고 시간이 없어 쩔쩔매는 安郞에게 수고 시킬 것 없이 그럴 작정이다.
To  Yumee Ahn                                  4월 9일
135 Tanglewood Dr.                            金 永 壽
Elk Grove VLG. Ill. 60007                      용산구 이촌동 한강 맨션 27-204
U. S. A.                                              SEOUL. KOREA
아버지의 편지 - 아버지의 마지막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