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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가 쓴 <나의 創作 방법> 戰線문학 1952년
관리자 2007-09-10
 
(이 글은 6.25 전쟁 당시, 피난처 대구에서 쓴 것으로 어휘나 맞춤법은 당시 필자가 쓴대로 옮긴다. --  관리자 )

 

김영수 * 나의 創作 방법

戰線文學 제 1권 제 1호 (창간호) p.30

단기 4285년 (서기 1952년) 4월 10일 발행

 

------ 펜을 들기까지 -----

 

가끔 길에서나 다방에서 아는 친구들을 만나면 으레 첫 인사가 “요새 참 여기 저기 많이 쓰데그려” 이런 소리 아니면 “자넨 참 빨리 쓰니까...” 이런 소리를 하기 일쑤다.

나는 지금껏 친구들의 이 같은 소리에 아무런 항변을 하지 않았다.

많이 쓴다고 하거나, 빨리 쓴다고 하거나, 그것이 한낱 악의 없는 인사말이기 때문에 나는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과연 나도 잘 분간 못하는 사이에, 많이 쓰는 사람이 되었고, 또 빨리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결코 많이 쓰지도 못하고 또한 결코 빨리 쓰지도 못하는 나로서는 나의 이 불명예의 명예에 대해서 언제까지나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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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이다.

부산에 있은 모 영화회사의 부탁을 받아 동래 온천에 들어가 시나리오 한편을 쓰고 온 일이 있다.

온천에 묵은 것이 도합 7일인가 8일 동안이었다.

친구들은 놀래었다. 어떤 극단 친구는, 그렇게 단시일에 빨리 써 갈기는 작품이 작품다울 수가 있겠느냐고 비꼬기도 하였다. 이런 소리를 들었을 때에도 여전히 나는 청이불문(聽而不問)하였다.

아무런 항변도 물론 하지 않았다.

왜? 그것은 내가 그 작품을 쓰기까지의 창작과정을 극단 친구는 너무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한 편의 소설이나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나는 어떠한 창작과정을 밟아야 되는지, 그들은 알 리가 없었고 그러니까 이러한 모르는 친구들을 붙잡고 사실은 그 작품을 창작하기까지에는 이러이러한 남모르는 고심이 있었오, 하고 설명할 아무런 흥미도 나는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나는 더 한층 많이 쓰고 빨리 쓰는 작가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전에 나는 우연히 모 다방에서 여류작가 한분을 만났다.

이분 역시 이런 투의 말을 했다. 그리고 자기는 1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작품이 쓰고 싶을 때에 가서야 작품을 쓴다는 말을 했다.

이때에도 나는 웃었다.

작품을 쓰고싶을 때에 가서야, 조용한 서재를 깨끗이 치우고, 정결한 책상을 대하고 앉아 붓을 드는 이 여류작가의 생활능력을 나는 한편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이 쓰고 빨리 쓰니까 작품다운 작품이 안 나오고, 1년에 한편, 10년에 한편 쓰는 작품이 세기의 대작이 될 수 있다는 논리에는 나는 불행히도 아무런 논리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은 일찍이 이 여류작가가 제시한 작품이 불행히도 세기의 대작이 못된 것과 같은 논리의 귀결이다.

먼 곳은 몰라도 일본만 하더라도, 丹羽文雄, 石川達三, 橫光利一  같은 작가들은 이미 40대에 10여권의 작품집을 세상에 내어 놓을 수 있었다.

나도, 또는 내가 우연히 만난 그 여류작가도 정녕 40은 넘었다.

우리들은 과연 몇권의 책을 썼던가.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의 林芙美子 도 말을 들으니 100여권이나 저서가 있다고 한다.

이러고 보면, 한국의 작가는 아무래도 조로증에 걸린 것만 같다.

나는 이 조로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도, 더 많이 쓰고 더 빨리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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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쓰고 빨리 쓰기로 이름 난 나는 과연 그렇게 빨리 쓰고 많이 썼던가.

이런 이야기는 이런 기회에 하기가 알맞은 것 같다.

또한 편집자의 주문도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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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동래온천에서 쓴 시나리오 하나를 예로 들기로 하자.

400자 원고지 120여장을 과연 7,8일 동안에 탈고를 했다.

하루 평균 따지자면 400자 20장 가량 쓴 셈이다.

결코 많지 않은 분량이며, 빠르게 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120여장을 쓰기 위해서 근 40일을 고생했다.

더구나 이것이 원고지에 글을 쓰는 것 만으로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화가 될 것이므로 나는 2중,3중으로 <붓>에 대한 책임을 느꼈던 것이다. 6.25전에 軍영화 <성벽을 뚫고>를 내어놓고 비로소 두 번째 세상에 내어놓는 영화인만큼, 영화인 전체의 책임도 책임이려니와 시나리오 작가인 나로서는 함부로 붓을 놀릴 수 없는 일이었다.

플러트를 설정하기는 용이했다. 거기 따라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도 과히 힘드는 일은 아니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스토리의 기복을 구성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며칠을 허비했는지 모른다.

물론 그동안 붓을 들 수가 없었다.

소설이라고 안 그런 것이 아니겠지만, 연극이나 영화는 특히 이야기의 전개에 뚜렷한 기복이 있어야 한다. 이 기복을 잘 삽입하고 못하는데 있어서, 작품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인 경우에는 나는 붓을 들기 전에 되도록 많은 영화인을 만나기로 한다. 되도록 많은 우수한 영화인을 만나, 내 머리 속으로 구성하고 있는 이야기를 이야기 한다. 그래서 영화인들의 건강한 의견을 가급적 많이 듣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방엘 가기도 하고, 술집 출입도 하게 된다.

이야기는, 친구들과 만나서 하는 동안에 더 완벽해지고 진실성을 띄게 된다.

다음에는 인물을 설정하는 문제다.

다시 말하면 성격의 파악이다.

나는 인물 하나하나마다의 성격이 뚜렷하게 내 머리 속에 새겨지기 전 까지는 붓을 못 든다.

가령 A라는 인물의 성격이 완전히 내 머리 속에 투영되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흐리멍덩하다면 원고지를 보기조차 싫다. 보기가 무섭다.

A,B,C,D 등, 작중에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이 취미가 교양정도가, 나와 가장 숙친한 친구와 같이 머리 속에서 약동되어야 한다.

그렇게 작중의 인물이 나하고 숙친하게 되면, 나는 혼자서 깊은 밤중이나 또는 거리를 걸으면서도 그들 작중의 인물하고는 곧잘 다이얼로그를 주고받는다. 그들 작중의 인물은 나와 숙친하게만 되면, 그들은 자유자재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들의 행동은 내 눈앞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러면 나는 목적을 이룬것이다.

나는 다만 붓과 원고용지를 마련해 가지고 그들을 따라가며 꾸준히 기록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물 하나하나와 감정을 교류하는 시간이 무한히 장구할수도 있다. 또는 무한히 단축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는 내가 쓰려는 작품의 인물을, 그 인물의 전형을, 거리에서 다방에서 찾기도 한다.

지난번 영남일보에 연재했던 <풍조(風潮)>에 등장하는 임정혜나 송마담이나 백박사는 모두 이렇게 거리에서 찾아낸 인물이다.

그래야만 붓을 든다. 동래에서 쓴 시나리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네 번이나 붓을 가했다. 그러니까 결국 붓을 들어서부터 탈고하기 까지는 7일인가 8일동안이지만, 사실 이러한 창작과정을 합산하자면 근 2개월이 걸린 셈이다.

이러한 나의 서재 비밀을 꿈에도 모르는 극단 친구나 위대한 여류작가씨에게 나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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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공군본부의 위촉으로 역시 시나리오를 썼다.

제명은 <출격명령>이었다.

이 시나리오도 쓰는 동안에 친구의 협력이 컸다.

영화예술에 대해 이론적 체계와 실제적 기술이 현재 누구보다도 못지않은 친구를 나는 다행히 작품을 쓸 임박해서 만났다.

권용(權龍)군이 바로 <출격명령>의 협력자였다.

붓을 들기전, 서로 플러트를 뜯어고치고, 화면을 구성하고, 클라이막스를 이리저리 삽입하기에 밤 가는 줄 몰랐다. 우리들은 끝내 한방에서 이틀이나 묵었다. 같이 자고 먹고 했다.

그래서 <출격명령>은 불과 5,6일 안에 탈고했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서 이렇게 빨리 쓰기도 처음이다.

쓰기 시작하면, 낮과 밤이 나에게는 없다.

밥도 끼니에 찿아 먹지를 못한다. 이틀이고 사흘이고, 그냥 책상 앞에 앉아서 밤을 샌다. 달리는 붓을 잠시라도 쉬고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할 틈이 정말이지 없는 것이다.

시나리오 <출격명령>은 나로서는 제일 빨리 쓴 작품이다.

그러나 지금껏 시나리오를 쓴 중에서 쓰고 나서 제일 마음에 들고, 자신을 갖게 되는 것이 이 작품이다.

나는 지금껏 시나리오를 열은 썼으리라.

<성벽을 뚫고>, <북위38선>, <삼래강>, <길>, <누가 바보냐?>, <풍랑>, <별은 빛난다> 등등...... 이중에서도 시나리오의 대표적인 것을 내어놓으라면, 나는 이번에 쓴 <출격명령>을 서슴지 않고 내어 놓으리라.

이번 작품은 나와 그리고 권군과 둘이 밤을 새어가며 쓴 작품이기에 나하나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니기에 과거 나 혼자서 쓴 어떠한 작품보다도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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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이 글도 아이들이 울고 떠들고 복작거리는 단칸방 구석에서 쓰고 있다. 빨리 빨리 더 빨리 써야겠는데 붓은 잘 나가지 않는다.

떠스토예프스키도 밥을 굶어가며 빚에 쫄려가며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찬바람이 이는 지붕밑 방에서 손을 훅훅 불어가며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나도 이들 위대한 작가들의 교훈을 받아 지금의 온갖 불리한 환경과 대우를 스스로 극복해가며 앞으로 더 많이 더 빨리 써야만 하겠다.

                                                                       (10월 17일 대구에서)

1940년 조선일보 편집국 기자 김영수
한국 희곡사 연표 ( 민병욱 편저 국학자료원 1994년)